할머니가 걸음을 멈췄다. 유나는 할머니 손을 놓지 않은 채로 같이 멈췄다.
묘비가 줄지어 있었다. 수백 개. 돌마다 태극기가 작게 꽂혀 있었다. 유나는 태극기를 세기 시작했다. 열두 개까지 세다가 할머니가 다시 걸어서 그만뒀다.
아침에 엄마가 말했다. 할머니랑 현충원 가. 할아버지한테 인사드려. 유나는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사진도 한 장뿐이다. 거실 장식장 안에 있는 흑백 사진. 군복을 입고 있고 웃지 않는다.
길을 꺾었다. 할머니는 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지도를 보지 않았다. 잔디 사이 좁은 길을 지나 네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
멈췄다.
묘비에 이름이 있었다. 유나는 한 글자씩 읽었다. 성이 자기와 같았다. 그 아래 숫자 두 줄. 태어난 해와 죽은 해. 유나는 빼기를 해봤다. 스물셋. 유나 나이 세 개를 합쳐도 안 되는 숫자였다.
할머니가 무릎을 꿇었다. 가방에서 하얀 수건을 꺼냈다. 빨아서 접어서 맨 위에 넣어온 것을 유나는 아침에 봤다. 할머니는 글자 하나하나를 천천히 닦았다. 비석 모서리까지.
유나는 국화꽃을 내려다봤다. 아까 정문 앞 가게에서 샀다. 셀로판지가 바스락거렸다. 꽃이 크고 하얬다. 유나는 꽃잎을 만졌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무서운 사람이었어?
할머니가 수건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안 무서웠어. 아이스크림 좋아했어.
유나는 묘비를 다시 봤다. 스물셋에 아이스크림을 좋아한 사람. 유나가 아는 스물셋은 옆집 언니뿐이었다. 언니도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꽃을 놓았다. 묘비 앞에. 셀로판지를 벗기려다가 그냥 뒀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아서.
할머니가 일어섰다. 무릎에 풀이 묻어 있었다. 유나가 손으로 털어줬다. 할머니가 고맙다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가 물었다. 배고프지?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는 걸으면서 뒤를 한 번 돌아봤다. 묘비가 줄지어 있었다. 태극기가 작게 흔들렸다. 셀로판지가 하나 바스락거렸다. 바람 때문이었다.
아이스크림 사줘. 유나가 말했다.
할머니는 웃지 않았다. 대신 유나의 손을 조금 더 꽉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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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현충일 맞아 6·25전쟁 전사자 추모하는 가족 — 뉴스핌, 2026년 6월 6일
한 줄 요약: 제71회 현충일, 한 어린이가 할머니와 함께 6·25전쟁 당시 전사한 할아버지의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작가의 말
사진 한 장이었습니다. 어린이와 할머니, 묘비 앞. 이름도 없고 사연도 없는 사진. 그런데 아이의 눈높이에서 보면 현충원은 다른 곳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에게 전쟁은 숫자이고, 할아버지는 사진 한 장입니다. 그 거리가 오히려 —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말하는 순간 — 모든 것을 가깝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