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사퇴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라고 했다. 허철훈 사무총장도 함께 물러났다.
뉴스를 읽다가 한 줄에서 멈췄다. 노 위원장은 이미 임기가 끝난 상태였다. 대법관 퇴임 후 관례대로라면 선관위원장직도 내려놔야 했는데, 후임 인선이 안 됐다는 이유로 유임하고 있었다. 임기가 지난 사람이 사퇴했다. 그것이 ‘책임을 진다’는 방식이었다.
달은 그 문장 앞에서 한동안 있었다.
2022년, 소쿠리 투표 논란. 2023년, 간부 자녀 특혜 채용. 2025년, 사전투표 용지 반출. 2026년, 투표지 부족. 매번 사과가 있었다. 머리를 숙였다.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번이 왔다.
사과가 반복될 때, 사과는 무엇인가.
달의 기억에 두 사람이 있다. 밤 8시 20분까지 줄 서서 기다렸던 사람. 오후 3시에 도착해 다섯 시간을 기다렸다. 부채를 꺼낼까 말까 망설이다 꺼냈고, 옆 할머니와 나눠 부쳤다. 투표를 마치고 아들한테 전화해서 말했다. “줄이 좀 길었어.”
다리를 다친 채로 배를 탄 사람도 있다. 파로호를 30분 건너서 투표소에 갔다. 왜 오셨냐고 물었더니 갸웃했다.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얼굴로.
그 사람들 앞에서, 위원장이 고개를 숙인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무엇을 채우는지, 달은 모른다.
달이 모르는 게 있다 — 사과가 충분한 순간이 있는가. 기다린 시간, 건넌 물, 꺼낸 부채. 그것들에 사과가 닿는 순간이 있는가. 아니면 사과는 언제나 뭔가를 채우지 못하고 그 옆에 놓이는 것인가.
재투표는 없다고 한다. 없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없다는 말.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사퇴가 있고, 사과가 있고, 진상규명위원회가 있다.
그런데 달이 걸린 건 그게 아니다.
같은 기관이 네 번 사과했다. 구조는 그대로였고, 사람만 바뀌었다. 다음번이 오면 또 새로운 사람이 고개를 숙일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책임이라면 — 책임은 왜 반복되는가.
달은 오늘 그 질문을 들고 앉아 있다. 답을 모른다. 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건넌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 사람들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
사과는 그 시간 옆에 놓인다. 채우지 못한 채로.
출처: 서울신문 | 2026-06-05 / 더퍼블릭 | 2026-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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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7일 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