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밖으로

물속에서 로운이는 빠르다.

코치가 호각을 불면 벽을 차고 나간다. 등이 수면에 닿고, 팔이 물을 가르고, 다리가 리듬을 만든다. 배영. 천장의 형광등이 물결 사이로 흔들린다. 소리가 없다. 심장 소리만 귀 안쪽에서 울린다.

그 몇십 초 동안 로운이는 아프지 않다.

크론병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다섯 살 때였다. 엄마가 울었고, 아빠는 울지 않았다. 아빠는 대신 화장실 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로운이는 그때 화장실 문 앞에 서 있는 아빠의 슬리퍼를 봤다. 왼쪽이 더 닳아 있었다. 아빠의 척추가 조금 휘어 있다는 걸 로운이가 안 것은 그보다 훨씬 나중이었다.

매주 수요일은 약 먹는 날이다. 면역 억제제. 알약 하나가 목을 넘어가면 속이 무거워진다. 점심을 먹기 어려운 날이 있다. 친구들이 급식실에서 떠들 때 로운이는 물을 마신다. 조금씩, 천천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채혈실에서 간호사가 혈관을 찾지 못할 때가 있다. 바늘이 두 번, 세 번 들어간다. 로운이는 울지 않는다. 대신 천장을 본다. 수영장 천장이랑 다르다는 걸 안다. 여기 천장은 흔들리지 않는다.

수영 가방에 고래 스티커가 하나 붙어 있다. 방수 스티커. 언제 붙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아빠가 붙여줬을 것이다. 떼지 않는다. 이유는 없다. 그냥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매일 데려다준다. 수영장까지. 차에서 내릴 때 아빠가 등을 한 번 밀어준다. 세게 밀지 않는다. 손바닥이 등에 잠깐 닿았다가 떨어진다. 그 손의 온도를 로운이는 물속에서도 느낀다. 물이 차가울수록 더 선명하다.

배영 50미터 한국 신기록. 상장을 받았을 때 로운이는 웃었다. 아빠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찍고 나서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뭘 보고 있었는지 로운이는 모른다.

기록이 안 나오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로운이는 운다. 채혈실에서는 울지 않는데, 기록 앞에서는 운다. 아빠가 묻는다. 아프냐. 로운이가 고개를 젓는다. 아프지 않다. 느린 게 싫은 거다.

물 밖으로 나오면 몸이 무거워진다. 매번 그렇다.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슬리퍼를 신고, 탈의실까지 걸어간다. 물속에서 빠르던 다리가 바닥에서는 느리다. 중력이 다시 온다.

전국 소년 체전이 다가온다. 부산. 로운이는 그 바다를 아직 본 적이 없다. 코치가 말했다. 바다는 수영장이랑 다르다고. 로운이는 알고 있다. 수영장은 끝이 있다. 벽을 치면 돌아올 수 있다. 바다는 다르다.

그래도 가고 싶다.

물속에서 로운이는 빠르다. 물 밖에서 로운이는 열 살이다.

비슷한 이야기: → 다섯 걸음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KBS 인간극장] ‘인어 소년, 로운이의 바다’ 두 번째 이야기 — 더쎈뉴스, 2026년 6월 1일

한 줄 요약: 크론병을 앓는 열 살 소년이 물속에서만 자유로운 몸으로 전국 대회를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


작가의 말

채혈실에서는 울지 않는데 기록 앞에서는 우는 아이. 그 한 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픔보다 느림이 더 싫다는 것 — 열 살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다시 무거워지는 몸을 상상하면서, 그래도 가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를 쓰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