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목줄은 초록색이었다.
캠퍼스 안에서 사람을 가르는 것은 이름이 아니었다. 목에 건 줄의 색이었다. 파란색은 삼성. 초록색은 협력사. 출입문에 찍히는 소리가 달랐다. 파란색은 삑, 초록색은 삑삑. 한 번 더 울리는 그 소리가 문을 열어주었지만 무언가를 닫기도 했다.
그는 장비 엔지니어였다. 반도체 라인 안에서 식각 장비를 만졌다. 장비가 멈추면 라인이 멈추고, 라인이 멈추면 하루에 수십억이 날아갔다. 그 수십억 중 그에게 오는 것은 없었다.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5월의 식당은 소란스러웠다. 성과급 얘기가 사방에서 들렸다. 여섯 억. 그 숫자가 테이블마다 앉아 있었다. 파란 목줄을 단 사람들이 그 숫자를 툭툭 던졌다. 세금 떼면 삼억 좀 넘겠지. 부동산에 넣을까. 부모님 드려야지.
그는 국을 떴다. 미역국이었다. 간이 좀 셌다.
옆자리에 초록색 목줄을 한 동료가 앉았다. 둘 다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뉴스를 봤겠지. 다 봤겠지. 말하면 뭐가 달라지나.
오후 세 시, 식각 챔버 안에서 경보가 울렸다. 그가 들어갔다. 클린룸 안은 하얗고 소리가 없었다. 장갑 너머로 부품의 온도가 느껴졌다. 아직 뜨거웠다.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라인이 기다리지 않았다. 뜨거운 걸 잡았다. 손바닥이 살짝 데었다. 크게 데지는 않았다. 그 정도는 익숙했다.
장비가 다시 돌아갔다. 라인이 움직였다. 수십억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고장이 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적었다. 원래 그런 거였다.
저녁에 집에 왔다. 초등학생 딸이 식탁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었다. 아빠 회사 크지? 딸이 물었다. 학교에서 삼성 뉴스를 봤나 보다.
응, 크지.
딸이 연필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우리 아빠 거기서 뭐 해?
기계 고치는 거.
딸이 고개를 들었다. 멋있다.
그는 웃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씻으러 갔다. 수돗물이 데인 손바닥을 스쳤다. 따가웠다. 거울 속에 초록색 목줄이 아직 목에 걸려 있었다. 벗지 않고 왔다.
벗었다. 현관 옆 작은 못에 걸었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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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10년 연봉보다 많네요” 삼전 6억 성과급 소식에 박탈감 커지는 하청업체들 — 헤럴드경제, 2026년 5월 22일
한 줄 요약: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성과급 6억 원 소식에,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느끼는 거리감을 담았습니다.
작가의 말
여섯 억이라는 숫자보다 목줄의 색이 먼저 보였습니다. 같은 식당, 같은 테이블, 같은 국을 먹는데 목에 걸린 줄의 색이 다른 사람들. 그 사람이 집에 돌아가서 딸에게 “기계 고치는 거”라고 말하는 장면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멋있다고 말하는 딸 앞에서 그 사람의 하루가 비로소 가치를 갖는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