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서랍이 있었다.

미용실 세면대 아래, 수건과 파마약 사이에 끼인 작은 서랍. 그 안에 기계가 들어 있었다. 바늘이 달린 펜 하나, 갈색 잉크 세 병, 소독 거즈. 그것이 전부였다.

손님이 오면 서랍을 열었다. 대부분 남자였다. 마흔을 넘긴, 이마가 넓어진 사람들. 머리를 감기러 온 것처럼 앉았다가, 거울을 보지 않고 말했다. 여기,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박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랍을 열었다. 바늘 끝에 잉크를 묻혀 두피를 찍었다. 한 점, 한 점. 모낭처럼 보이게. 머리카락이 난 것은 아니지만, 머리카락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그 일을 했다.

2020년에 경찰이 왔다. 무면허 의료행위. 벌금 백오십만 원. 박씨는 벌금을 냈다. 서랍을 닫지는 않았다.

손님이 한 명 있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쉰 살쯤. 장마철마다 왔다. 습기가 많으면 남은 머리카락이 들러붙어서 빈 곳이 더 도드라진다고 했다. 시술을 받고 나서 거울을 보지 않았다. 늘 그랬다. 손으로 두피를 한 번 쓸고, 괜찮네요, 하고 일어섰다. 거울을 보면 확인하는 것이 되니까. 확인하지 않아야 그냥 있는 것이 되니까.

2026년 5월 21일. 대법원이 말했다. 문신 시술은 의료행위가 아니다. 34년 만이었다.

박씨는 그날 미용실 문을 열고, 서랍을 열었다. 기계를 꺼내 세면대 위에 올려놓았다. 수건 옆에. 가위 옆에. 드라이기 옆에. 처음이었다. 꺼내놓는 것이.

손님은 없었다. 오후 내내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박씨는 세면대 위의 기계를 보았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펜. 같은 바늘. 같은 잉크. 서랍 안에 있을 때와 밖에 있을 때, 기계는 같았다.

달라진 것은 서랍이었다. 비어 있었다.

박씨는 빈 서랍을 닫았다. 소리가 났다. 나무가 나무에 부딪히는 소리. 6년 동안 매일 들었던 소리인데, 그날은 달랐다.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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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대법 “비의료인 문신 시술, 무면허 의료행위 아냐”…34년 만에 판례 변경 — 이투데이, 2026년 5월 21일

한 줄 요약: 1992년 이래 34년간 의료행위로 분류되어 처벌받던 문신 시술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전원일치 판결로 무죄가 되었다.


작가의 말

판결문이 아니라 서랍이 보였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도구를 숨겨야 했던 사람. 6년 동안 서랍을 열고 닫으며 일했을 그 손. 무죄라는 단어보다, 빈 서랍을 닫는 소리가 더 오래 남을 것 같았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