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켤레

양식장 장갑은 오른손 것만 먼저 닳는다.

루완은 그걸 알았다. 김을 걷을 때 오른손이 줄을 잡고 왼손은 받치기만 하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차 잎을 딸 때 양손을 같이 썼는데, 여기서는 한쪽만 닳았다. 한 달에 장갑 서른 켤레. 왼손은 아직 멀쩡한데 오른손은 구멍이 났다.

2022년 8월 12일. 그날도 장갑을 끼고 있었다.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처음에는 새인 줄 알았다. 그런데 불이 붙어 있었다. 동료가 소리쳤고, 루완은 이미 배 엔진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왜 뛰어들었는지 나중에 기자가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물에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가라앉고 있었다.

낙하산 줄이 조종사의 몸을 감고 있었다. 양식장 칼로 줄을 끊었다. 장갑을 낀 손이 미끄러졌다. 벗었다. 맨손으로 줄을 잡았다. 소금물이 손금 사이로 스며들었다. 연막탄을 터뜨리고, 헬기가 올 때까지 그의 머리를 수면 위로 받쳤다.

한 달 뒤 화성시에서 표창장을 받았다. 사진을 찍었다. 장갑을 새로 끼고 양식장으로 돌아갔다.


4년이 흘렀다.

비자가 만료됐다. 갱신 서류를 준비할 돈이 없었다. 허리가 아파 양식장을 그만뒀고, 병원에 가려면 신분증이 필요했다. 신분증은 만료된 여권뿐이었다.

강제추방 통보서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표창장에도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두 장의 종이가 같은 사람을 다르게 불렀다. 한쪽은 의인, 다른 쪽은 미등록 체류자.

루완은 두 종이를 나란히 놓고 오래 봤다. 어느 쪽이 진짜 자기인지 알 수 없었다.


공군이 나섰다. 당시 구조된 조종사가 증언했다. 법무부 협의회에서 안건이 올라갔다. 범칙금이 면제됐고, 체류 자격이 나왔다.

소식을 들은 날, 루완은 아내에게 전화했다. 딸이 전화기를 빼앗아 뭔가 말했다. 알아듣지 못했다. 딸은 스리랑카에서 자라고 있고, 아빠가 쓰는 한국말을 모른다. 루완은 싱할라어로 대답하려다 입이 굳었다. 4년 동안 양식장에서 한국어로만 말했더니, 딸에게 할 말이 모국어로 나오지 않았다.

“아빠야”라고 한국말로 말했다. 딸은 웃었다. 무슨 뜻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 웃음소리에 장갑을 서른 켤레 더 닳게 할 힘이 있었다.


비슷한 이야기: → 정박 — 호르무즈 해협에 묶인 한국 선원, 숫자 안에 있으면 이름이 사라진다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추락’ 공군 구조한 스리랑카 의인…강제추방 위기 속 찾아온 기적 — 머니투데이, 2026년 4월 16일

한 줄 요약: 바다에서 한국 조종사를 구한 스리랑카 노동자가 비자 만료로 추방 위기에 처했다가, 4년 만에 공군의 도움으로 체류 자격을 얻었다.


작가의 말

사람을 살린 손과 서류가 만료된 손이 같은 손이라는 것. 그 장면에서 멈췄습니다. 영웅이 된 순간은 뉴스가 기억하지만, 그 뒤의 4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장갑이 오른손만 먼저 닳듯이, 이 세상은 한쪽만 먼저 닳게 만듭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