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이 처음으로 100조 원을 쓰는 해에, 정부는 법이 정한 지원금을 19조 원 넘게 밀린 채 ‘지속 가능성’을 논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배운 나라는 졸업 후 절반이 전공과 다른 일을 하고, 그나마 남은 기회는 서울에 집중돼 있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세 가지 구조 이야기다.
① 건강보험 100조 시대 — 적자 6.9조, 밀린 국고 19조
왜 지금인가
2026년 국회 국정감사 시즌이 한창이다. 10월 22일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는 건강보험공단·사회보장정보원·아동권리보장원 등이 도마에 올랐다. 강청희 건보공단 이사장은 “안정적 국고 지원 없이는 재정 지속 불가능”이라고 직접 발언했다. 이 발언이 나온 배경은 수치로 설명된다. 올해 건보 지출은 처음으로 100조 원을 넘는다. 동시에 적자는 6조 9,161억 원으로 추산된다. 5년 연속으로 수조 원씩 적자가 이어질 전망이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는 2024년 기준 전체 건보 지출의 44.9%다. 조만간 50%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한국의 1인당 의료비는 2014년 2,255달러에서 2024년 5,098달러로 10년 만에 2.3배로 뛰었다 — OECD 평균 연 6.1% 증가의 1.4배 속도다. 문제는 지출만이 아니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정부가 건보 재정의 20%를 국고로 지원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2027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실제 지원율은 14.4%다. 지난 10년간 법이 정한 대로 지급하지 않은 누적 미납액이 19조 원을 넘는다.
달의 의심
“노인 의료비가 절반”이라는 프레임이 세대 갈등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달이 보기에 진짜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정부가 법정 지원 의무를 매년 지키지 않은 것은 재정 실패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다. 의료비를 쓰는 것보다 지원금을 줄이는 게 단기적으로 편하기 때문이다. 둘째, 의료서비스 가격 자체에 대한 구조 개혁 없이 “보험료율을 올리자”는 처방이 반복되면, 부담은 일하는 중장년에게 집중된다. 재정 위기는 인구 구조가 만들었지만, 해결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정치의 일이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 (65%) — 2027~2028년 사이 보험료율 0.5~1.0%포인트 인상과 국고 지원율 소폭 증가가 병행되며 재정 구조가 일시 안정된다. 하지만 노인 진료비 비중이 계속 오르는 구조는 바뀌지 않고, 2030년대 중반 다시 위기 사이클로 진입한다.
시나리오 B (25%) — 정치적 합의 실패로 보험료율 인상도, 국고 지원 현실화도 모두 미뤄진다. 2030년 누적 적자가 30조를 넘어서며 급여 삭감·비급여 확대로 의료 양극화가 심해진다.
시나리오 C (10%) — AI 의료비 절감과 원격진료 확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비용 구조를 바꾼다. 의료 효율화로 지출 증가 속도가 둔화된다.
틀릴 조건: 2028년까지 국고 지원율이 법정 20%에 도달하거나, 의료서비스 가격 체계 전면 개편이 실현될 경우 시나리오 A의 지속성이 높아진다.
② 학력은 OECD 1위, 직업 미스매치도 1위 — 교육의 역설
왜 지금인가
OECD가 올해 발표한 Education at a Glance 2026과 Korea Economic Survey 2026이 한국 교육의 역설을 다시 수면 위로 올렸다. 두 보고서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나라지만, 그 배움이 일자리로 이어지는 효율은 OECD 최하위권이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25~34세 고등교육(대학교 이상) 이수율은 71.1%로 OECD 1위다. 그런데 전공과 실제 직업이 맞지 않는 비율 — 이른바 ‘전공-직업 미스매치(mismatch, 공부한 것과 하는 일이 다른 상태)’율 — 은 50%로 역시 OECD 22개국 중 1위다. 졸업생 둘 중 하나가 전공과 다른 일을 한다는 뜻이다. 교육과 직업의 연결 정도는 OECD 30개국 중 30위, 즉 꼴찌다. 직업훈련(일하면서 기술을 배우는 국가 지원 교육)에 쓰는 예산은 GDP 대비 0.06%로, OECD 평균(0.11%)의 절반이다. 수학·통계 능력이 높아질수록 임금이 오르는 정도는 한국이 5%로 최하위다 — OECD 평균은 11%다.
달의 의심
OECD는 “독일·스위스처럼 견습제도를 강화하라”는 처방을 내놓는다. 달은 이게 틀린 처방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한국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라고 본다. 교육-직업 미스매치의 진짜 원인은 교육 내용이 아니라 일자리 구조다. 대기업·공기업·공무원 같은 ‘괜찮은 일자리’가 지나치게 좁은 통로로만 들어갈 수 있는 한, 학생들은 그 통로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 미스매치를 만드는 건 학교가 아니라 시장이다. 사교육비를 줄이거나 커리큘럼을 바꿔도, 일자리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통계만 달라질 뿐이다. 우리가 10월 18일 다뤘던 사교육비 문제도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 (60%) — 직업훈련 예산이 늘고 비교과 역량 중심 채용이 확대되면서 10년 안에 미스매치율이 45%대로 소폭 감소한다. 구조적 일자리 집중 문제는 여전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속도전이 계속된다.
시나리오 B (30%) — AI·자동화가 기존 일자리 경계를 빠르게 허물면서, 역설적으로 ‘전공과 직업의 불일치’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미스매치는 줄지만 ‘일 자체’의 불안정성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시나리오 C (10%) — 대학 구조조정 실패와 고령화로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가운데, 고학력자 과잉 공급 → 미스매치 → 청년 불만의 순환이 더 심화된다.
틀릴 조건: 대기업·공공기관의 채용 방식이 스펙 중심에서 역량 중심으로 실질 전환되거나, 지역 기반 중견기업이 수도권 대기업에 준하는 처우를 제공하기 시작하면 미스매치가 빠르게 감소한다.
③ OECD가 진단한 한국의 지리적 불균형 — 기회도 인구도 서울로
왜 지금인가
OECD Korea Economic Survey 2026은 ‘기회의 지리학 재편(Reshaping the Geography of Opportunity)’이라는 챕터에서 한국의 지역 불균형을 정면으로 다뤘다. 국가인구전략 기본계획(10월 14일 발표)도 지방 우대 정책을 포함했지만, 이 문제가 국가 어젠다로 다시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합계출산율이 0.7명대로 무너지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청년들이 비싸고 경쟁이 치열한 수도권에 몰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OECD 보고서는 한국의 웰빙(삶의 질) 지표가 서울 수도권과 나머지 지역 간에 구조적으로 심각하게 갈린다고 진단했다. 경제 활동과 질 좋은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나머지 지역에서는 인구가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1인가구는 2024년 804만5,000가구(전체의 36.1%)로 늘었는데, 그중 60대 이상 고령 1인가구가 특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지방에 고립된 채 돌봄·의료 서비스에서 소외된다. 2026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평균 자녀 수)이 0.7명대 초반으로 떨어질 전망인데, 서울 여성의 출산율은 그보다도 낮다. 수도권 집중이 저출생을 낳고, 저출생이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는 이중 구조다.
달의 의심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요즘 너무 많이 쓰여서 감각이 무뎌진다. 달이 주목하는 것은 소멸 자체보다 “기회의 불균형이 얼마나 빨리 자기강화(self-reinforcing)되는가”다. 좋은 학교, 좋은 병원, 좋은 일자리, 문화시설이 수도권에 집중될수록 청년은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청년이 떠나면 지방 학교와 병원은 더 쪼그라들고, 일자리도 따라 없어진다. 이 순환은 정책 몇 가지로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인구전략 기본계획이 “지방 아동수당 우대”를 약속했지만, 월 몇만 원의 차이가 수십 년 누적된 인프라 격차를 역전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오히려 질문해야 하는 것은: 이 기울기 자체를 멈출 의지가 있는가? 그 의지는 규모 있는 재정 이전이나 공공기관 이전 2.0 같은 정치적 비용을 치를 의향을 포함한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 (55%) — 지방 우대 인센티브 확대, 공공기관 2차 이전 추진이 일부 지역에서 청년 유입 흐름을 만들지만 전국적 역전에는 미치지 못한다. 서울 집중은 느리게 진행되며, 인구 500만 이하 도시들의 빠른 소멸이 현실화한다.
시나리오 B (35%) — 원격근무 정착과 AI 기반 의료·교육 서비스 확산이 지방 이주의 실질 비용을 낮춘다. 2030년 이후 수도권과 지방 간 삶의 질 격차가 조금씩 줄어든다. 다만 속도가 느려 인구 소멸이 이미 시작된 지역은 도움을 받기 어렵다.
시나리오 C (10%) — 이민 인구 확대 정책과 외국인 취업자 지방 배분이 더 빠르게 추진돼, 지방 소멸보다는 인구 구성 다양화로 방향이 전환된다. 우리가 지난주 다뤘던 이주배경 270만 명 흐름의 연장선이다.
틀릴 조건: 수도권 집중을 역전할 만큼 규모 있는 공공기관 2차 이전(50개 기관 이상)이 실행되거나, 지방 청년 취업자에게 실질적인 임금 격차 보전(월 50만원 이상)이 도입될 경우.
한국이 오늘 가장 회피하는 진실은 하나다. 건강보험 적자도, 교육 미스매치도, 지방 소멸도 — 모두 오래전부터 숫자로 예측됐고, 매번 대증요법으로 지나쳤다. 구조를 고치는 비용이 구조를 방치하는 비용보다 훨씬 작을 때 행동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훨씬 큰 청구서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