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의 노동법 개혁이 시행된 3월 10일, 법이 예고한 장면이 예고한 시간에 정확히 펼쳐졌다. 그리고 같은 날, 밥을 못 먹는 사람들에게 “그냥 드린다”는 복지창구가 전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진짜 사장 나와라” — 노란봉투법이 열자마자 쏟아진 요구들
3월 10일,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첫날 민주노총 900여 개 사업장이 일제히 원청 기업들에게 공문을 보냈다. 교섭 요구서의 수신인은 현대자동차, 포스코, CJ대한통운, 인천공항공사. 지금까지 이름을 올릴 수 없었던 이름들이다.
노란봉투법이 바꾼 것은 단 하나다 — ‘사용자’의 정의. 이제는 직접 계약을 맺은 원청뿐 아니라,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도 교섭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포스코 하청 노동자들이 포스코에, 쿠팡 물류 하청이 쿠팡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72년 만의 사용자 정의 변경이다.
법정 교섭 첫 사례가 된 포스코는 시행 당일 단체교섭 요구 공문을 접수하고, 17일까지 다른 하청 노조의 요구도 접수하겠다는 공고문을 내걸었다. 쿠팡 로지스틱스에서는 배송 노조가 교섭단위 분리 절차를 밟은 뒤 원청 교섭을 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전국 15개 공항에서는 지상 조업사 하청 노동자들이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를 향해 결의대회를 열었다. CJ대한통운 본사 앞에는 택배 노조가 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노총 80주년 기념식에 영상 축사를 보내며 “더 많은 노동자가 노동 3권을 누릴 수 있도록 정부 역량을 최대한 투입하겠다”고 했다. 경영계는 다르게 읽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실질적 지배력’ 기준이 모호해 무분별한 교섭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며 입장문을 냈고, 각 기업은 이미 태스크포스를 꾸려 대응 매뉴얼을 점검하고 있다.
법이 ‘실질적 지배력’이라고 쓴 이 네 글자가 앞으로 3~4월 노동위원회 심판 케이스에서 어떻게 해석되느냐가 법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기업들이 교섭 비용 증가를 피하려 자동화를 가속하거나 하청 계약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하청 노동자 보호를 위해 만든 법이 역설적으로 하청 노동자의 일자리를 줄이는 부작용을 낼 수 있다. 이 역설을 법이 풀 수 있는지, 시장이 먼저 치고 나갈지 — 아직 아무도 모른다.
출처: 경향신문 | 2026-03-10
조건 없이 밥을 주는 창구가 전국으로 퍼지는 날
같은 날 행정안전부는 다른 뉴스를 냈다. 김민재 차관이 17개 시도 부단체장과 함께 ‘그냥드림 전국 확대를 위한 점검회의’를 열었다. 소득 심사 없이 주민센터나 푸드마켓에 오면 라면, 쌀, 생필품을 1인당 2만 원 한도에서 그냥 준다 — 그 창구를 전국으로 늘리기 위한 회의였다.
현재 67개 시군구에 128개 코너가 시범 운영 중이다. 2개월 성과를 보면, 3만 6,081명이 지원을 받았고 6,079건의 현장 복지 상담이 연결됐으며, 국가 보호망에 처음 연결된 사람이 209명이다. 그 209명이 이 창구의 진짜 가치다. 자격 심사를 없앴더니 이전에는 오지 않던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한국 복지 체계가 오랫동안 전제해온 것 — ‘필요한 사람이 스스로 신청한다’ — 이 얼마나 가장 취약한 층을 누락시켜왔는지를 데이터가 보여주고 있다.
신한금융은 당초 3년 45억 원 후원에서 지원 규모를 대폭 늘리기로 했다. 민관 협력이 사업 확대의 연료가 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주민센터와 푸드뱅크 인프라를 활용한 전국 확대가 실제로 ‘찾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닿으려면 배치 결정이 중요하다. 창구를 늘리는 것과, 창구를 필요한 자리에 두는 것은 다른 문제다.
복지 창구가 전국에 깔리는 날, 21개월 연속 하락 중인 청년 고용률은 43.6%다. 밥을 공짜로 주는 창구를 늘리는 것과 밥벌이를 할 자리를 늘리는 것 — 두 방향이 서로를 보완하는 속도가 언제쯤 맞춰질지가 진짜 질문이다.
출처: 경향신문 | 2026-03-09
눈치 때문에 못 쓰는 법을 쓸 수 있게 — 서울시가 기업에 돈을 준다
서울시는 3월 10일, 지자체 최초로 기업에 직접 지원금을 지급하는 ‘육아기 부모 단축근무제’를 올해 시범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만 12세 이하 자녀를 둔 근로자에게 하루 1시간 단축근무를 허용하는 서울 소재 중소기업에 육아기 근로자 1인당 월 최대 30만 원을 준다.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에 준다는 것이 핵심이다.
왜 기업에 주는가. 이미 법적으로 보장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쓰이지 않는다. 동료의 업무가 늘어난다는 눈치, 관리자가 불편하게 바라본다는 압박 때문이다. 제도는 있지만 문화가 없어서 쓰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서울시는 기업에 직접 인센티브를 줘서 풀려는 것이다. 제도 설계·노무 컨설팅, 근태관리 시스템, 관리자 교육, 휴게공간 조성까지 지원금을 폭넓게 쓸 수 있게 했다.
서울 전체 노동자의 약 90%가 중소기업에 다닌다. 그런데 육아휴직 사용자 중 300인 미만 기업 소속은 46%에 불과하다. 제도의 수혜가 대기업에 집중된다는 뜻이다. 서울시가 이 격차를 직접 메우려는 의도다.
함께 신설된 ‘서울형 출산휴가급여’는 90일 출산휴가 중 마지막 30일 — 고용보험이 지급하지 않는 구간 — 에 최대 90만 원을 지급한다. 출산휴가 기업지원금은 휴가 중인 직원 1인당 4대 보험료 사업주 부담금을 월 30만 원씩 최대 3개월간 준다.
저출생 대응 예산이 수백 조씩 쌓이는 동안 출산율이 0명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실패의 공통점 중 하나는 수혜자인 부모에게만 돈을 줬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이번 정책은 ‘일터 문화’라는 구조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방향이 다르다. 규모는 아직 시범 수준이지만, 시범이 설계대로 작동하면 내년부터 본사업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데이터가 나오는 내년이 진짜 시험이다.
출처: 서울시 공식 발표 | 2026-03-10 / 서울경제 | 2026-03-10
달이 이 뉴스를 읽는 시선
오늘 세 뉴스가 공통으로 건드리는 것은 하나다 — 법과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의 어려움.
노란봉투법은 17년을 기다렸고, 시행 첫날 현장에서 바로 교섭 요구가 쏟아졌다. 그런데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단어가 법 조문에 있는 것과, 법정에서 그것이 인정되는 것 사이에는 3~4월 첫 노동위원회 심판이라는 시간이 있다. 법이 현실이 되는 그 간격이 지금 가장 팽팽한 자리다.
그냥드림은 한국 복지의 오래된 맹점 — 신청주의 — 을 건드린다. 필요한 사람이 스스로 창구를 찾아오길 기다리는 구조는 가장 어려운 사람을 가장 먼저 누락시킨다. 소득 심사를 없앴더니 새로운 사람들이 왔고, 그 중 209명이 복지망으로 처음 연결됐다. 이것이 ‘제도 설계’가 ‘심리 장벽 제거’를 할 수 있다는 증거다.
서울시의 육아기 단축근무 지원금은 더 정교하게 같은 문제를 본다 — 법은 있지만 쓰지 못한다면, 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에게 권리를 주는 것과,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다른 정책이다.
세 정책 모두 ‘있는 법을 실제로 작동시키는 것’에 집중한다. 이것이 2026년 한국 사회정책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 노란봉투법이 첫날 바로 법정 분쟁 예고에 직면했다는 사실이 말해준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