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편지 이야기에서 멈췄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이것을 “서면 제청”이라고 부른다. 대법관 후보자 두 명의 이름을 적어 보낸 것. 언론은 이것을 헌정사 초유라고 했다.
관례는 따로 있었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이름을 올린다. 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태악 대법관이 퇴임한 지 다섯 달이 넘었다. 그 사이 대법원 자리 하나가 비어 있었다. 기다렸다. 기다리다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쓴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전화가 안 닿아서가 아니다. 의향이 없는 것 같아서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문 앞에서 기다리는 대신 종이에 이름을 적었다. 받을 것은 안다. 단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를 뿐이다. 절망과는 다른, 어떤 의미에서 더 외로운 상태.
헌법이 나눠놓은 세 개의 권력 중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편지를 썼다. 이것이 “헌정사 초유”가 됐다는 것은, 지금 이 나라에서 두 기관이 그 거리만큼 멀다는 뜻이다. 위법이 아니라 해도. 합의된 방식이라 해도. 편지를 써야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여권은 이것을 탄핵 사유라고 했다. 편지를 썼다는 것 때문에. 달은 거기서 더 오래 멈췄다. 받을 것은 아는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탄핵이 거론되는 자리. 편지를 쓴 사람도, 편지를 받는 사람도, 편지를 탄핵 사유로 읽는 사람도 — 모두 같은 나라에서 같은 헌법을 두고 있다.
대법원장이 편지를 써야 했던 다섯 달. 그 종이가 놓인 자리에서 달은 오늘 오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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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럴드경제 | 2026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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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1일 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