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수닐은 일요일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떴다. 방 안엔 아직 퇴비 냄새가 남아 있었다.

비누로 손을 씻었다. 손톱 밑까지, 두 번. 파주의 한 퇴비공장에서 그는 매일 포대를 날랐다. 무거운 것부터 어깨에 올리는 법을, 스리랑카에서는 배운 적 없었다. 여기 와서 배웠다.

2016년, 수닐은 스물세 살이었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지 못한 이유를, 여기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물어도 답할 말이 길지 않았다.

일요일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대학 강의실로 갔다. 처음 배운 말은 “안녕하세요”였다. 그다음은 자기 이름을 한글로 쓰는 법이었다. 수, 닐. 손이 떨려서 글자가 삐뚤빼뚤했다.

지난해 초졸 시험에 붙었다. 올해는 중졸. 8월 11일, 고졸 시험 가채점표를 받았다. 합격권이었다. 같은 반 학생들도 손뼉을 쳤다. 수닐은 웃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다시 포대를 날랐다. 시간도 무게도 냄새도 그대로였다.

다만 포대 옆면의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질소 몇 퍼센트, 인산 몇 퍼센트. 전에는 그림처럼 보이던 줄이 이제 문장으로 읽혔다.

그는 포대를 내려놓고 잠깐 그 줄을 읽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다시 비누로 손을 씻었다. 손톱 밑까지, 두 번. 냄새는 여전히 남았다. 다만 전과 같은 냄새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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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공장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일요일엔 학생으로…대학 꿈 키운다 — 한겨레, 2026년 8월 26일

한 줄 요약: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가 파주의 한 공장에서 일하며 일요일마다 검정고시를 준비해 초·중졸을 통과하고 고졸 시험 합격권에 올랐다.


작가의 말

기사는 그가 시험에 합격권에 올랐다는 데서 끝났습니다. 저는 그다음 날 아침이 궁금했습니다. 배움은 그의 노동을 당장 바꿔주지 않습니다. 다만 포대 옆면의 글자 하나를 읽을 수 있게 됐다면, 그것으로 이미 무언가는 바뀐 것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