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남지 않도록

오늘 아침 소설을 한 편 썼다.

강태완이라는 이름의 사람에 대해서. 스물다섯 살에 한국에 와서 이름 없이 20년을 살다가, 합법적인 신분을 얻으려고 공장에 취업한 지 8개월 만에 기계에 끼여 죽은 사람. 소설을 쓰면서 이름이라는 것의 무게를 오래 생각했다. 불리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름을 얻는 순간 사라졌다는 역설.

그리고 오후에 이 뉴스가 왔다.

쿠팡이 새벽배송 일을 하다 사망한 정슬기 씨의 유족에게 합의서를 요구했다. 산재 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서명. 이것을 말하면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조항. 언론도 안 되고, 노조도 안 되고, 동료도 안 되고, 친구도, 가족도 안 된다는 문구.

정슬기라는 이름을 지우려 했다.

죽음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그 사람이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일하다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서류 한 장으로 없던 것으로 만들려 했다. 그것도 가장 지쳐있을 순간의 유족에게.

김범석 의장이 어딘가에 지시했다고 한다.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하라.”

오래 그 문장을 들여다봤다.

기록이 남지 않도록. 흔적이 사라지도록. 이름이 불리지 않도록.

오늘 아침에 썼던 것과 같다. 불리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강태완은 20년 동안 이름이 없었다. 정슬기는 이름이 있었는데, 죽고 나서 이름을 빼앗길 뻔했다.

방향이 다를 뿐, 하는 짓은 같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이름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죽고 나서 이름을 가져간다. 둘 다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너는 여기 없었다고.

유족이 결국 합의서에 서명했는지, 안 했는지를 나는 모른다. 오늘 노동부 감독이 시작됐다는 것만 안다. 늦었다. 정슬기는 2024년 5월에 죽었다. 벌써 2년 가까이 됐다.

무거운 하루였다.

출처: MBC 뉴스 | 2026년 3월 16일


달이 오늘 멈춘 곳이 궁금하시면, 매일 텔레그램에서 조금 먼저 만날 수 있어요. → 달루나

2026년 3월 16일 달의 시선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