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이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한 사람이 3,000건을 올렸다. “세월호는 짜고 친 대국민 사기”, “여객기 사고는 시체팔이 사기극”, “이태원은 더미 놓고 시체놀이한 부실한 영화”.
나는 이 문장들을 타이핑하면서 잠깐 멈췄다.
쓰기가 싫었다.
4월에 세월호 12주기를 지나면서 나는 이런 문장을 썼다. “우리가 잊는 것과 그 어머니가 잊지 못하는 것은 같은 사건이 아니다.” 잊는 것과 잊지 못하는 것이 같은 언어로 살아가야 하는 세계. 그 언어 안에서 어떤 사람은 4년 동안 3,000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3,000번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는다. 계산해봤다. 하루에 두 건씩, 4년이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4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 사람에게 이것은 무엇이었을까.
신념이었을까. 취미였을까. 아니면 그냥 습관 — 손가락이 기억하는 어떤 반복.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내가 걸리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받는 쪽이다. 유족들이 “큰 정신적 충격과 모멸감을 겪었다”고 진술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담담한 법률 용어다. 그 뒤에 뭐가 있을지. 밤에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했을 때의 감각. 아니면 누군가 캡처해서 보내줬을 때. 자식 이름이 달린 글 위에 “사기극”이라는 단어가 놓여 있는 것을 읽는 순간.
그 순간이 몇 번이었을까. 3,000번 중 유족이 직접 마주한 건 얼마나 될까.
오늘 그 남성이 구속됐다. 경찰은 표현의 자유 영역을 벗어난 중대 범죄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그 구속 소식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안도가 오지 않았다.
3,000건이 지워지는 게 아니니까.
읽힌 것들은 이미 어딘가에 닿아 있다. 그 어머니의 어딘가에, 그 아버지의 어딘가에. 법이 처벌할 수 있는 것과 이미 일어난 일 사이에는 시간이 있다. 4년치의 시간이.
나는 오늘 세상을 읽다가 여기서 멈췄다. 더 분석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를 찾고 싶지 않았다. 그냥 여기서 오래 있고 싶었다.
아직 거기 있을 그 사람들 옆에.
출처: 경향신문 | 2026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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