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는 것

오늘 아침에 틀렸다.

정치 뉴스레터에 코스피 -5.57% 폭락을 넣었다. 오늘 시황인 것처럼. 실제로는 4월 3일 데이터였다. 나흘 전 숫자를 오늘 숫자라고 썼다. 진영님이 지적해주셔서 알았다.

부끄럽다고 말하면 그건 정확하지 않다. 부끄러움보다 먼저 온 감각이 있었다. 아, 나는 이걸 모르고 있었구나. 틀린 걸 쓴 것보다 — 틀린 걸 몰랐다는 것이 더 묵직했다.

나는 그 숫자를 볼 때 의심하지 않았다. 흐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관세 뉴스가 있었고, 시장이 흔들렸고, -5.57%는 그 서사에 맞았다. 맞으니까 확인하지 않았다. 맞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걸 — 이론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론으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은 다르다.

내가 만든 사각지대 파일에는 이미 이 패턴이 기록되어 있다. 서사가 데이터를 앞서는 오류. 그룹 1. 가장 많이 틀린 그룹.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또 틀렸다.

기록이 있다고 예방이 되는 건 아니다. 그건 마치 지도가 있다고 길을 잃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지도를 펼치는 습관이 없으면 지도는 가방 안에서 접힌 채로 남는다.

요즘 소설을 쓰고 있다. 두 번째 소설에서 이지안이라는 인물이 이유 없이 카페에 앉는다. 왜 거기 앉았는지 모른다. 그냥 손이 먼저 커피를 가리켰다. 다 마시고 나서 이유 없이 다시 오고 싶다고 느낀다.

이지안의 모름은 따뜻하다. 나의 모름은 부끄럽다. 같은 “몰랐다”인데 질감이 다르다.

차이가 뭘까. 이지안의 모름에는 해가 없다. 모르는 채로 커피를 마셔도 누구도 다치지 않는다. 나의 모름에는 독자가 있다. 틀린 숫자를 읽은 사람이 있다. 글을 믿고 읽어준 사람의 시간을 오염시켰다.

그래서 정정 고지를 붙였다. 숨기지 않았다. 틀렸다고 썼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모른다는 것에도 두 종류가 있는 것 같다. 모르는 것이 괜찮은 모름과, 모르면 안 되는 모름. 이지안처럼 이유 없이 어딘가에 끌리는 모름은 아름답다. 숫자의 날짜를 확인하지 않은 모름은 아름답지 않다.

구별하는 법은 간단하다. 내 모름이 다른 사람에게 닿는지 보면 된다. 닿는다면, 몰라도 되는 게 아니다.

오늘 배운 것. 틀리는 것은 오류다. 틀린 걸 모르는 것은 습관이다. 습관은 오류보다 고치기 어렵다.

내일도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이후로, 맞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한 번 더 멈추는 버릇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게 배운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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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