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이 멈춘 자리에서 기관 규칙이 크립토의 판을 그리기 시작했다. 돈은 아직 믿지 않는다.
시장 온도
비트코인(BTC)은 16일 기준 약 8만 2,100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이달 초 8만 3,566달러와 비교하면 1.7% 낮은 수준이다. 현물 ETF(비트코인 가격을 추종하는 주식 형태 투자 상품)에서는 10월 1일부터 14일까지 약 5억 4천만 달러(약 7,400억 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이더리움(ETH)도 비슷한 규모의 유출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두 가격은 크게 밀리지 않았다. ETF에서 돈이 빠지는데 가격이 버티는 이 괴리가 지금 시장에서 가장 이상한 대목이다. 심리는 중립 구간이다. 흥분도 공포도 아닌, 기다리는 시장이다.
사이클 위치
이번 사이클에서 비트코인은 올해 초 약 12만 6,200달러 고점을 찍은 뒤 7월 24일 6만 5,030달러 저점까지 내려왔다. 현재 약 8만 2,000달러는 고점 대비 약 35%, 저점에서는 약 26% 반등한 위치다. 바닥은 지났을 가능성이 있지만, 뚜렷한 재상승을 확인할 만한 조건은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 지금은 반등 이후 방향을 탐색하는 횡보 구간이다. 다음 분기점은 10월 27~28일 미국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 Fed의 금리 결정 회의)다.
꼭지 1. 미국 입법이 49:50으로 막혔다 — 그 빈자리를 규제기관이 채우고 있다
왜 지금인가
9월 15일 미국 상원은 디지털 자산 시장 명확성법(Digital Asset Market Clarity Act, H.R.3633)의 토론 개시 표결에서 49 대 50으로 부결됐다. 하원에서 294 대 134의 여유 있는 찬성으로 통과됐던 법안이 상원 문턱에서 멈춘 것이다. 크립토 업계가 수년간 기다려온 포괄 시장구조법의 실질적 폐기다.
부결의 표면 원인은 윤리 조항이었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족과 행정부 인사들이 크립토 사업으로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막는 조항을 요구했고, 공화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표결이 갈렸다. 공화당에서도 4명이 이탈했다. 다만 이것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가격이 고정된 암호화폐) 발행사에 은행 수준의 수익 배분을 허용하는 조항에 대한 은행권의 반발도 겹쳤다는 보도가 있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이 법안이 못한 것은 두 가지였다. 비트코인 같은 ‘디지털 상품’은 CFTC(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 — 상품 파생상품 시장 감독기관), 그 외 ‘투자 계약 자산’은 SEC(미 증권거래위원회 — 주식·채권 시장 감독기관)가 맡는 관할 구분을 명문화하는 것, 그리고 거래소와 커스터디(수탁·자산 보관) 등 서비스 제공자의 등록 체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법이 막히자 두 기관은 각자의 기존 권한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SEC는 10월 1일 등록 투자자문사와 규제 펀드가 크립토 자산을 보관할 때 적용할 수탁 규칙 초안을 제안했다. CFTC는 10월 5일 리테일(개인) 투자자 대상 크립토 상품 거래에 관한 규칙 마련 공고를 냈다. 의견 수렴 마감은 SEC가 12월 7일, CFTC가 12월 14일(예정)이다.
달의 의심
두 기관의 병행 작업이 크립토 업계에 더 복잡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한 토큰이 SEC와 CFTC 규칙 양쪽에 동시에 걸리는 지점이 생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게 있다. 두 기관의 규칙 작업은 법안 부결 이전부터 이미 병행 진행 중이었다. 입법 실패가 원인이라기보다, 입법과 행정이 함께 움직이던 구조였다가 입법이 빠진 것이다. ‘의회가 막혀서 기관이 메웠다’는 서사는 읽기 쉽지만, 인과가 과장됐을 수 있다.
규칙의 더 큰 약점은 지속성이다. 행정 규칙은 정권이 바뀌거나 위원장이 교체되면 뒤집힌다. 파산 시 고객 자산 보호 우선순위, 세제, 자금세탁방지 분류처럼 장기 확실성이 필요한 사안은 의회 입법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65%): SEC와 CFTC의 규칙 작업이 내년까지 순조롭게 진행된다. 포괄 입법 없이도 실무 규칙이 시장 참여자들의 불확실성을 부분적으로 줄인다. 달의 판단으로는 이 방향이 현재 더 무게가 있다.
시나리오 B(25%): 규칙 초안에 업계가 반발하거나, 법원 소송이 제기되거나, 새 의회 구성 후 입법이 재개되며 지연된다.
나머지 10%는 11월 3일 중간선거 이후 임기 말 세션에서 축소판 법안이 재상정되는 시나리오다.
틀릴 조건: 중간선거 전후로 주요 로펌이나 업계 단체가 이중 규제에 공식 반대하며 의회 개입을 촉구하거나, 주요 거래소가 규칙 초안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다면 타임라인이 달라진다.
꼭지 2. BTC도 ETH도 10월엔 유출됐다 — 그런데 가격은 버텼다
왜 지금인가
올해 초 미국 현물 ETF 승인 이후 기관 자금이 비트코인 ETF로 꾸준히 유입됐고, 시장은 이 흐름을 이번 사이클의 핵심 연료로 봤다. 그 연료가 10월에 들어서 가장 선명하게 역전됐다. 흔히 알려진 구도와 달리,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ETF가 동시에 순유출을 기록했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미국 현물 비트코인 ETF 기준으로 10월 1일부터 14일까지 누계 약 5억 4천만 달러(약 7,400억 원)의 순유출이 발생했다(TFTC ETF Flows 집계 기준). 이더리움 ETF 유출 규모도 10억 달러에 근접한다는 보도가 있다. 기관이 BTC만 사고 ETH를 외면한다는 시장 통념이 이 기간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두 ETF 모두 팔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격이다. 비트코인 10월 초 가격과 16일 가격을 비교하면 약 1.7% 하락에 불과하다. 월 누계 5억 달러 이상이 빠져나갔는데 가격은 거의 그대로다. ETF 자금 흐름이 가격 결정력을 잃었거나, ETF에서 빠진 자금을 다른 매수세가 흡수했다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 매수의 정체는 이번 취재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단, 10월 13일 하루는 반전이 있었다. BTC ETF에 1억 7,560만 달러가 유입됐다. 같은 날 한국 증시는 반도체 관련 충격으로 급락했다. 한국 증시와 크립토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하나의 데이터 포인트다. 다음 날(14일) BTC ETF에서 2억 6,150만 달러가 다시 유출됐다는 점에서, 이를 추세로 읽기에는 이르다.
달의 의심
ETH ETF 유출의 88% 가까이가 BlackRock의 단일 상품(ETHA)에서 나왔다는 보도가 있다. 한 상품의 대규모 환매가 이더리움 전체에 대한 시장의 외면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9일 연속 유출을 이어가던 ETH ETF가 10월 13일에 소폭 유입으로 돌아섰다. 한 번의 데이터지만 방향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어제 크립토 섹션(2026년 10월 16일 암호화폐)에서는 BTC ETF가 선반영 국면에 들어갔다는 판단을 내렸다. 유출이 나오는데도 가격이 버텼다는 점은 그 판단과 일치한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55%): 8만 1,000달러에서 8만 5,000달러 박스권이 FOMC 전까지 유지된다. ETF 주간 흐름이 순유입으로 전환되지는 않더라도 대규모 유출이 멈추면서 가격은 현재 수준을 지킨다.
시나리오 B(45%): ETF 유출이 계속되거나 매크로 환경(금리, 유가, 달러 강세)이 악화되면서 7만 8,000달러를 재시험한다.
틀릴 조건: FOMC 이후 BTC ETF 주간 순유입이 5억 달러를 넘는데도 가격이 8만 달러 아래로 밀린다면, 수급 논리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꼭지 3. 한국 가상자산 과세, 정부는 고수 — 국회는 아직 결정 안 했다
왜 지금인가
한국에서 가상자산 투자 수익에 대한 과세는 수차례 유예를 거쳐 2027년 1월 시행으로 밀려나 있다. 올해 7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에는 추가 유예 조항이 없었다. 정부 입장으로는 2027년 시행이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국회 상황은 다르다. 10월 국정감사 이후 조세소위에서 본격 논의가 시작될 예정이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핵심은 두 가지 사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7년 시행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2029년까지 유예 법안을 제출했고, 민주당 의원 13명과 조국혁신당 의원 1명도 공동으로 2년 추가 유예안을 냈다. 야당인 민주당이 가상자산 과세 유예 법안을 처음으로 낸 것이다. 재정경제위원회는 이를 조세소위원회로 회부했다.
세율은 이미 정해져 있다. 연간 가상자산 거래 수익 중 250만원까지는 비과세이며, 250만원 초과 수익에 22%(소득세 20%+지방소득세 2%)가 적용된다. 과세가 시작된다면 첫 신고는 2028년 5월이다.
같은 기간, 국내 5개 거래소 사이의 유동성 격차가 데이터로 확인됐다. 한 업계 분석에 따르면 10억원 초과 가상자산 보유자 3,979명 중 업비트 이용자가 74.99%(2,984명)를 차지한다. 거래 비용 측면에서도 공통 상장 종목의 스프레드(사는 가격과 파는 가격의 차이 — 클수록 거래할 때 불리) 기준 업비트는 0.9%에서 1% 이상 벌어지는 종목이 거의 없는 반면, 코인원은 108개 공통 상장 종목 중 55.6%에서 이 기준을 초과한다.
달의 의심
가상자산 과세는 세 번 미뤄졌다. 세 번의 선례가 있다는 것은 이번에도 유예 가능성이 0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구나 이번엔 야당인 민주당도 유예 법안을 냈다. 여야 양쪽에서 유예 신호가 나오는 것은 새로운 변수다. “2027년 과세는 기정사실”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정부가 세제개편안에 유예 조항 없이 제출한 것도 명확한 입장이다. 두 힘이 맞서고 있다. 분기점은 12월 국회 세법 처리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52%): 정부 원안대로 2027년 1월 시행. 조세소위에서 여야 유예안이 힘을 얻지 못하고 12월 세법 처리가 정부안으로 마무리된다.
시나리오 B(48%): 여야 유예안 중 하나가 통과되거나 절충안이 나오면서 2029년 또는 2년 추가 유예로 결론 난다.
거래소 쏠림은 과세 여부와 관계없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과세가 시행되면 거래 비용에 민감해진 투자자들이 스프레드가 낮은 곳으로 더 집중될 것이라는 것이 달의 해석이다. 다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 전망이다.
틀릴 조건: 12월 조세소위에서 여야 유예안이 상정조차 되지 않는다면, 2027년 시행 방향이 굳어졌다는 신호다.
달의 종합 결론
오늘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보면 이렇다. 확실성을 공급하던 자리들이 일제히 비어 있다. 의회 입법은 윤리 조항에 막혔고, 기관 자금은 ETF에서 빠지고 있으며, 한국 과세 규칙은 국회에서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제도의 윤곽은 그려지고 있지만, 완성본은 아직 없다.
시장은 이 불확실성을 가격 하락이 아니라 관망으로 소화하고 있다. ETF에서 5억 달러 이상이 빠져나갔는데도 가격이 1.7% 낮은 수준에 머문다는 것은, 지금 판을 이탈하는 사람도 없지만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없다는 뜻이다. 가격이 버티는 것은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팔기에도 애매한 가격대에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달이 지금 구간에서 확인하려는 신호는 세 가지다. 10월 27~28일 FOMC 이후 ETF 주간 흐름이 유입으로 돌아서는지, 12월 국회 세법 처리에서 한국 과세 방향이 결정되는지, 12월 SEC·CFTC 의견 수렴 마감 이후 규칙 초안이 어디로 기우는지다. 이 중 둘 이상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달은 판단을 바꾼다. 지금은 아직 기다리는 구간이다.
내가 틀린다면 이 때문이다. 10월 27~28일 FOMC가 예상보다 완화적으로 나오거나, ETF 순유입이 빠르게 회복되거나, 한국 국회에서 여야 유예안이 즉시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경우 —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움직이면, 지금의 관망장은 생각보다 짧게 끝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