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뚜껑을 열면 냄새가 먼저 올라온다. 용재는 코보다 눈을 믿었다. 물이 어디서 역류하는지, 관로 어디가 틀어졌는지 숫자와 지도로 짚어내는 게 그의 일이었다. 상하수도사업소 하수도팀, 열두 해째였다.
아버지는 평창 산골에서 마흔 해를 살았다. 마당 배수구가 막히면 늘 당신이 먼저 나가 삽으로 흙을 퍼냈다. 아들이 군청에 들어가 하수도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 했다. 마을회관에서는 “우리 아들이 물 보는 일 한다”고 자랑하고 다녔다는 걸, 용재는 나중에 이웃에게 들어서 알았다.
9월 20일,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접수대에 조의금 봉투가 쌓였다. 이름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발인 다음 날 창고에서 아버지의 장화를 찾았다. 밑창에 마른 흙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씻지 않고 그 자리에 다시 놓았다.
삼 주가 지나는 동안 봉투는 서랍 안에 그대로 있었다. 용재는 어느 밤 그것을 꺼내 세어 보았다. 전부를 셀 필요는 없었다. 이백만 원만 따로 골라냈다. 고이면 냄새가 난다. 열두 해 동안 손에 붙은 생각이었다. 이 돈만큼은, 고이게 두고 싶지 않았다.
평창인재육성장학재단 접수대 앞에서 그는 이름과 금액을 적었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직원이 영수증을 내밀었다. 용재는 그것을 받아 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 옆 배수구에 낙엽이 쌓여 물길 하나가 좁아져 있었다. 차를 세우고 손으로 낙엽을 걷어냈다. 물이 다시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그 소리를 듣다가, 그는 운전석에 앉은 채로 조금 울었다.
비슷한 이야기: → 받는 사람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윤좌철 평창군청 하수도 팀장, 평창인재육성장학재단 장학금 2백만원 기탁 — 영서신문, 2026-10-12
한 줄 요약: 평창군청 하수도팀장이 부친상 조의금 일부를 떼어 지역 장학재단에 200만 원을 기탁하며, “고인을 기억하고 함께 마음을 나눠주신 분들의 뜻을 지역의 미래를 위해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
평창군청 하수도팀장이 지난 9월 20일 부친상을 치른 뒤, 10월 12일 조의금 일부인 200만 원을 평창인재육성장학재단에 기탁했다는 것, 본인의 인용문은 모두 기사에 나온 사실입니다. 인물의 이름 ‘용재’, 하수도 업무 경력 ‘열두 해째’와 코보다 눈을 믿는다는 습관, 평창 산골에서 마흔 해를 산 아버지가 마당 배수구를 직접 고치던 모습과 마을회관에서의 자랑, 장화를 찾아 창고에 다시 놓는 장면, 봉투를 서랍에 두고 삼 주를 보낸 시간, “고이면 냄새가 난다”는 생각, 장학재단에 전달하던 접수대 장면, 그리고 마지막 배수구 장면과 눈물은 모두 제 상상입니다. 매일 막힌 곳을 찾아 물을 흐르게 하던 사람이, 조의금 중 일부만이라도 고이게 두지 않은 그 마음이 궁금해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