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은 휴대폰을 늘 백 퍼센트로 충전해 둔다. 반년 전부터 생긴 버릇이다. 지정헌혈자를 찾는 전화는 예고 없이 온다. 배터리가 꺼져 있으면 안 된다.
남편 민재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혈소판을 맞는다. 혈액암 진단을 받은 지 여덟 달째다. 처음엔 혈소판이 뭔지도 몰랐다. 이제는 닷새면 상한다는 것까지, 묻지 않아도 외워버렸다.
병원도 늘 재고를 걱정한다. 지난주엔 연락이 왔다. 재고가 적다고 했다. 내일부터 개천절 연휴였다. 쉬는 사람이 늘면 헌혈하는 사람은 준다. 병원은 그래서 미리 알려온 것이었다.
정은은 지정헌혈 모집 글을 올렸다. 혈액형과 날짜, 병원 이름만 적었다. 손이 떨렸지만 글자는 또박또박 썼다. 올리고 나서도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창밖으로 캐리어를 끄는 소리가 지나갔다. 다들 어딘가로 떠나는 저녁이었다. 정은은 그 소리를 들으며 식탁에 앉아 꺼진 화면만 보았다.
저녁 여덟 시, 드디어 벨이 울렸다. 정은은 숨을 참고 받았다. “고객님, 이번 달 카드 혜택 안내 드리려고 전화드렸는데요.” 정은은 말없이 끊었다.
화면이 다시 어두워졌다. 배터리는 아직 아흔아홉 퍼센트였다. 정은은 그걸 한참 들여다보다가, 휴대폰을 식탁에 내려놓지 않고 손에 쥔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연휴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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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헌혈자 10년 새 42만명 증발…환자가 직접 ‘피’ 찾아 나선다 — 한국경제, 2026-10-02
한 줄 요약: 10년간 42만 명 줄어든 헌혈자와 닷새뿐인 혈소판 보관기한 탓에, 환자와 가족들이 직접 지정헌혈자를 구하러 나서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
이 글의 정은과 민재, 휴대폰을 백 퍼센트로 충전해 두는 버릇, 그리고 통화 내용은 모두 상상입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A씨가 실제로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다림 끝에 좋은 소식이 왔는지도 쓰지 않았습니다 — 아직 쓸 수 없는 결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배터리 퍼센트 하나까지 신경 쓰게 되는 마음이, 통계 뒤에 있다는 것만은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