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태어났고 어디에 사느냐가, 위기를 견디는 힘과 사회가 붙여 주는 자격을 함께 정한다. 이달의 분양 지도, 환율 충격 앞에서 나뉜 세대의 소비 반응, 그리고 “노인은 75세부터”라는 선제적 제안. 세 꼭지는 겉보기엔 각기 다른 이야기지만, 집과 소비 여력과 노후 자격이 출생 연도와 거주지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배분되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서울 아파트 진입로는 단 한 곳 — 10월 분양 4만5691가구의 구조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0월 분양 예정 물량은 4만5691가구(임대 포함)다. 작년 10월 1만7000여 가구와 비교하면 171.8%, 약 2.7배 늘어난 수치다. 3기 신도시(수도권 외곽에 지정된 대규모 신규 택지지구) 물량이 본격화되는 시기와 겹쳐 숫자가 크게 뛰었다. 거래 위축이 이어지는 서울 부동산 시장(10월 2일 달루나 분석 참고)에 이 물량이 어떤 의미인지, 숫자를 뜯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수치를 해부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4만5691가구 중 수도권(서울·경기·인천) 몫은 56.3%(2만5711가구)이고, 서울만 따지면 1869가구, 전체의 4.1%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서울 물량의 69.8%인 1305가구는 강동구 고덕강일3단지 한 곳에 몰려 있다.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공급하는 이 단지는 토지임대부 방식—토지는 SH가 보유하고 건물만 분양해 입주자는 매달 토지 임대료를 내는 형태—이라 기존 아파트보다 분양가가 낮게 책정될 전망이지만, 확정 분양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강남3구 물량은 서초구 재건축 단지 한 곳의 일반분양 28가구가 전부다. 해당 단지의 전체 160가구 중 기존 조합원 배정 132가구를 제외한 숫자다. 수도권 내에서도 서울은 4.1%, 경기·인천이 52.2%다. “공급이 수도권에 쏟아진다”는 표현은 맞지만, 서울로 직접 들어오는 물량은 극히 제한적이다.
지방에는 2만가구가 넘게 공급된다. 하지만 지방 전체에는 이미 6만9134가구(비수도권 비율 72%)의 미분양 재고가 쌓여 있다. 준공후미분양—다 지어 놓고도 주인을 못 찾은 집—이 늘어난다는 건 건설사 자금난의 직접적 신호다.
나는 이 구조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지점이 지방이라고 본다. 서울 수요자에게 이달의 물량은 사실상 고덕강일3단지 한 문 앞에 줄서는 문제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토지임대부라는 낯선 구조에도 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있다. 반면 지방 6만9000가구 미분양 위에 2만가구를 더 얹는 건 공급 확대가 아니라 재고 추가다. 내 판단이 틀린다면: 지방 분양 착수율이 예상보다 높아 80%를 넘고, 지방 청약 경쟁률도 평균 1:1을 웃도는 신호가 나올 경우다.
시나리오 A(55%)는 서울 고덕강일3단지에 청약이 집중되고 지방은 거점 도시 일부 단지만 선별 소화되는 흐름이다. 서울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이어지고, 지방과의 거리는 더 벌어진다. 시나리오 B(30%)는 3기 신도시 경기·인천 물량이 실수요자를 흡수하면서 지방도 예상보다 선방하는 그림이다. 기저효과(작년 분양이 극도로 적었기 때문에 올해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는 착시)가 실제 소화로 이어지는지가 변수다. 틀릴 조건: 지방 분양 착수율 80% 이상, 청약경쟁률 평균 1:1 이상.
외환위기를 겪어본 세대가 왜 환율이 올라도 덜 움츠렸나
환율이 오른다는 건 수입물가가 오른다는 뜻이다. 식품·원자재·에너지 가격이 뛰면 가계는 지갑을 닫게 된다. 그런데 얼마나 닫는지는 세대마다 달랐다. 한국은행이 10월 1일 발표한 연구보고서(BOK 경제연구 2026-27호, 저자 최영준 연구위원)는 1998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노동패널(KLIPS) 데이터를 분석해, 환율 급등 시기 세대별 소비 반응의 차이를 추적했다.
결과는 반직관적이다. X세대(1970~1980년생)는 환율 급등 시 소비를 거의 줄이지 않은 반면, MZ세대(1985~2000년생)는 더 크게 움츠렸다. 외환위기를 직접 겪어본 세대가 오히려 충격을 더 잘 견딘 것이다. 보고서는 이를 ‘적응 효과’로 설명한다. 경제 충격을 몸으로 겪은 세대는 다음 충격에 덜 반응하도록 경험이 각인된다는 논리다. 이 효과는 자산이 적거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의 비율, 높을수록 빚 부담이 크다)이 높은 가계에서 두드러졌다. 빚 부담이 큰 집일수록 필수 지출이 경직돼 있어, 위기 경험 여부가 소비 결정에 더 직접적으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통신비처럼 끊기 힘든 지출 항목에서도 X세대의 소비 유지 성향이 관찰됐다.
이 연구의 세대 구분에는 빈틈이 있다. 1981~1984년생은 X세대(~1980)와 MZ세대(1985~)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연구 기간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X세대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취업·사업 세대였고, MZ세대는 같은 시기 학생이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연구가 실제로 측정하고 있는 게 ‘세대 고유의 특성’인지, ‘자산 규모와 생애주기의 차이’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내가 틀린다면: 원문에서 세대 변수를 자산 규모·DSR·소득으로 통제한 뒤에도 세대 간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남는다면, 이 분석은 세대 각인 효과를 실제로 포착한 것이다.
시나리오 A(55%)는 통제 후 세대 효과가 약화되는 쪽이다. 그렇다면 MZ세대의 더 큰 소비 위축은 세대 특성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낮은 자산·높은 부채에서 비롯된 것이고, 정책적으로는 자산 형성 지원이 더 직접적인 처방이 된다. 시나리오 B(30%)는 통제 후에도 세대 효과가 견고하게 남는 쪽이다. 외환위기라는 역사적 충격이 특정 세대의 소비 행태에 지속적으로 새겨져 있다는 결론으로 확장되며, 경제 위기 교육과 금융 리터러시 정책의 근거로 쓰일 수 있다. 틀릴 조건: 원문에서 자산·DSR·소득 통제 후 세대 변수가 통계적 유의성을 잃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노인을 75세부터”라고 먼저 말한 건 노인회장이었다
10월 2일 제30회 노인의날 기념식에서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이 “노인 연령 기준을 현행 65세에서 75세로 상향해야 한다”고 공식 제안했다. 대한노인회는 전국 노인 단체—정부 부처나 국회가 아닌 민간 단체다. 이 제안이 즉각 법 개정이나 정부 방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제안이 이례적인 이유가 있다. 노인 기준 상향은 통상 국가 재정을 아끼려는 정부·정치권이 꺼내고, 당사자 단체가 반발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번엔 당사자 단체가 먼저였다.
이 제안의 배경에는 빠르게 바뀌는 숫자가 있다. 통계청이 10월 1일 발표한 국가데이터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111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1.6%다. 한국은 2024년에 이미 65세 이상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있다. 2072년에는 이 비율이 47.7%에 달할 것이라는 통계청 장기 추계도 이날 함께 제시됐다. 현재 65세를 기준으로 지급되는 기초연금(소득 하위 70%의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달 지급하는 노후 소득 보장 급여)·지하철 무료 승차·각종 경로우대 혜택—이 기준이 75세로 올라간다면, 현재 65~74세가 받는 혜택들을 10년 늦게 받게 된다. 지금 50~60대라면 자신이 ‘노인’이 되는 시점과 혜택 개시 시점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이 제안을 ‘현실에 맞는 기준 조정’으로만 읽으면 재정 논리가 선두에 선다. 그런데 65~74세 안에서도 건강 상태·소득·자산은 크게 다르다. 연령 기준 하나로 다양한 상황을 일괄 처리하는 방식이 갖는 내부 불평등 문제다. 재정 절감 효과는 총액으로 집계되지만, 경계에 걸린 저소득·건강 취약 계층이 받는 타격은 그 총계에 잡히지 않는다. 내가 틀린다면: 인구전략위원회나 복지부가 ’65~74세 대상 급여의 소득·건강 기반 재설계’ 방안을 공식 검토 과제로 발표한다면, 이 제안은 단순 의제를 넘어 정책 설계 수준의 논의로 이행된다.
시나리오 A(60%)는 이 제안이 민간 단체 의제 수준에 머무는 흐름이다. 기초연금·지하철 무료 같은 급여 기준 변경은 법 개정이 필요해, 단기간 내 제도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시나리오 B(25%)는 인구전략위원회가 이 주제를 공식 검토 과제로 채택하거나, 여야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해 입법 논의로 격상되는 흐름이다. 틀릴 조건: 정부 부처나 인구전략위원회가 10월 내 ‘노인 연령 기준 재검토 착수’를 공식 발표할 경우.
상설 용어 설명
토허제(토지거래허가제): 서울시 등이 지정한 특정 지역에서 주택·토지 거래 시 해당 구청의 사전 허가가 필요한 제도. 투기 수요 차단 목적으로 설정되며, 허가 없이 거래하면 무효다.
종부세(종합부동산세): 일정 기준 이상 고가 부동산 보유자에게 재산세와 별도로 부과하는 세금. 보유 부동산 합산 공시가격이 기준을 넘으면 납부 의무가 생긴다.
갭투자: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맡기는 목돈(전세보증금)을 끼고, 적은 자기자금으로 주택을 매수하는 방식.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을수록 필요한 자기자금이 줄어든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 집값 대비 대출할 수 있는 한도 비율. 집값이 10억원이고 LTV가 70%이면 최대 7억원까지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하다.
기초연금: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국가가 매달 지급하는 노후 소득 보장 급여. 2024년 기준 최대 월 33만원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