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논은 새 안전모를 들여다보았다. 어제 받은 것이다. 옆에는 흠집과 시멘트 가루가 앉은, 3년째 쓰던 낡은 것이 놓여 있다. 새것 이마에는 흰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 위에 검은 글씨로 그의 이름이 찍혀 있다.
어제 안산의 강당에서 그의 이름이 불렸다. 사회자가 이름 앞에서 잠깐 머뭇거리다 다시 불렀다. 사장이 안전모를 건넸다. 그는 스티커 위에 남은 비닐을 손톱으로 뜯어냈다. 속으로 되뇌었다. ชื่อ(이름).
현장에서 그는 3년째 “야”였다. 반장은 그를 부를 때 턱짓을 먼저 썼다. 이름은 서류에도 적혀 있었다. 출입증에, 월급 명세서에. 다만 사람 입으로 불린 적은 드물었다.
새 안전모를 쓰고 나가려다 문 앞에서 멈췄다. 콘크리트 가루가 튀면 스티커 귀퉁이가 일어날 것이다. 땀이 배면 글자가 흐려질 것이다. 그는 새것을 선반에 얹고, 낡은 것을 썼다.
동료 니웟이 왜 안 쓰냐고 물었다. 아논은 웃기만 했다. 아직 설명할 말을 고르지 못했다. 서류의 이름은 아무도 소리 내 읽지 않는다. 이 스티커는 누군가 실제로 불러준 이름이었다.
밤에 그는 새 안전모를 창가에 둔다. 가로등 불빛이 글자 위에 앉는다. 이름이 조용히 빛난다. 내일 아침에도 그는 낡은 모자를 쓰고 나갈 것이다. 새 이름은 창가에 남아, 다음에 불릴 날을 기다릴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 → 이름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안산시, “이주노동자에게 이름을 불러주세요”… 노동존중 캠페인 개최 — 뉴미디어타임즈, 2026-09-30 (행사는 9월 29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렸습니다)
한 줄 요약: 안산시가 이주노동자 노동존중 캠페인에서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 50명에게 이름이 적힌 안전모를 전달하며 인권 존중의 뜻을 모았습니다.
작가의 말
안산에서 열린 행사에서 태국 출신 노동자분이 직접 소감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 발언 내용은 기사에 자세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의 아논과 니웟, 그리고 이들이 겪은 구체적인 장면들은 그 실존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부 제 상상입니다. 이름이 새겨진 물건을 받았을 때, 오히려 아껴두느라 쓰지 못하는 마음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자리에 없었던 진심 하나를 써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