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석은 셔츠를 다림질했다. 이어하우스에 가는 날엔 늘 그랬다. 목깃을 세우고 단추를 끝까지 채웠다. 거울 앞에서 머리도 다시 넘겼다. 괜찮아 보여야 했다. 누가 묻는 것도 아닌데.
이웃링커가 전화로 불러줬다. “오늘 계절밥상 있어요, 오세요.” 거절할 말을 미리 준비해뒀지만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같은 전화를 받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화가 왔다. 사람이 그리워서 거는 전화가 아니라, 달력에 적혀 있어서 거는 전화라는 걸 박무석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매번 셔츠를 다렸다.
부침개 반죽 앞에서 누군가 뒤집개를 건넸다. 박무석은 받아 들고 잠시 멈췄다. 태어나 예순 해 동안 전을 부쳐본 적이 없었다. 명절마다 아내가 부엌을 맡았고, 그는 상 앞에 앉아 먹기만 했다. 기름 냄새가 좁은 부엌을 채웠다. 지글거리는 소리가 오래 잊고 있던 소리 같았다.
반죽을 뒤집으려다 손목이 꺾였다. 절반이 접시 밖으로 흘렀다. 옆에 있던 앳된 얼굴의 청소년 봉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박무석도 따라 웃었다. 웃고 나서야 알았다. 누가 자신의 실수를 보고 그냥, 아무 걱정 없이 웃어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플라스틱 통에 담아온 전을 냉장고에 넣었다. 옷에서 기름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씻지 않고 그대로 잠들었다. 냄새가 밤새 방 안에 남아 있었다.
다음 계절밥상은 겨울이었다. 이번엔 전화가 오기 전에, 박무석이 먼저 달력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다시 셔츠를 다렸다. 목깃을 세우고, 단추를 끝까지 채웠다.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강북구 이어하우스, 고립가구 15명·이웃링커 20명 한가위 전 나눔 — 한국사회복지저널, 2026-09-22
한 줄 요약: 서울 강북구가 지난 21일 이어하우스에서 고립가구 주민 15명과 이웃링커·청소년 봉사자 등 총 20명이 함께 ‘계절밥상: 이웃과 함께하는 한가위’ 행사를 열어 명절 전을 부치고 나눴다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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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돌봄이 사람을 그리워해서가 아니라 달력에 적혀 있어서 온다는 사실은 언뜻 쓸쓸해 보인다. 그런데 그 반복이야말로 누군가를 계속 살아있게 하는 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침개를 뒤집다 흘리고, 그걸 보고 누군가 그냥 웃어주는 짧은 순간 — 뉴스에는 나오지 않는 그 웃음 하나가, 다음 계절까지 그 사람을 버티게 할 수도 있다고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