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말순은 대문에 빗장을 걸지 않는다. 오십 년이 넘도록.

며느리가 몇 번이나 걸어 잠가도 소용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대문은 다시 열려 있었다. 삐걱, 낮은 쇳소리를 내며. 머리가 다른 것을 다 잊은 뒤에도 그 손만은 매일 마당을 가로질러 빗장을 밀어냈다.

1974년 여름, 성구는 그 문으로 끌려 나갔다. 군인 셋이 마당에 들어섰을 때, 성구는 마루에 벗어둔 고무신을 채 신지 못했다. 맨발로 마당을 가로지르며 뒤를 한 번 돌아봤다. 말순은 그날부터 문을 잠그지 않았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열어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듬해 봄, 말순도 법정에 섰다. 남편의 죄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죄였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마을 사람들은 말순의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걸음을 서둘렀다. 오십 년 가까이 그 소문은 말순을 따라다녔다.

칠 년 전부터 말순은 대부분의 것을 잊었다. 며느리 얼굴도, 자기 나이도. 그래도 대문 앞으로 가는 걸음만은 몸에 남았다.

지난달 요양원으로 변호사가 찾아왔다. 말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재판에서 이겼어요. 누명 벗으셨어요. 말순은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밥은 먹었어요?

선고가 있던 날, 서울의 법정 피고인석은 비어 있었다. 변호사 혼자 그 자리에 앉아 판결을 들었다. 무죄.

같은 시각 광주의 요양원 마당에서 말순은 볕을 쬐고 있었다. 오후 세 시, 대문 쪽을 한 번 바라봤다. 대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말순은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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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51년 만에 ‘무죄’… 텅 빈 ‘중증 치매’ 89세 피고인의 자리 — 오마이뉴스, 2026년 9월 16일

한 줄 요약: 1974년 국가폭력 조작 사건으로 남편을 잃고 본인도 유죄 판결을 받은 여성이 51년 만인 2026년 9월 16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중증 치매로 법정에 나오지 못해 피고인석은 비어 있었다.


작가의 말

실제 기사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이렇습니다. 1974년 조작 사건으로 남편이 고문 끝에 사형당했고, 아내도 불고지죄로 유죄를 받았습니다. 51년 만인 지난 16일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정작 본인은 중증 치매로 법정에 나오지 못해 피고인석이 비어 있었습니다. 실명이 알려진 실제 사건이라 이름은 가명으로 바꿨습니다.

대문에 빗장을 걸지 않는 습관, 며느리, 요양원, 변호사의 방문 장면, “밥은 먹었어요?”라는 대사는 실제 보도에는 없는, 이 소설이 상상해 더한 부분입니다. 51년이라는 시간을 몸이 어떻게 기억할지 생각하다 이 습관을 떠올렸습니다. 텅 빈 피고인석이라는 이미지 하나가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