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 그녀는 우재를 담요째 안고 역으로 걸었다. 청주로 가는 첫차 시간이었다. 플랫폼에는 아무도 없고, 자판기 불빛만 밝았다.
우재는 네 살이 되어서도 고개를 제 힘으로 가누지 못했다. 눈도 귀도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그녀는 창가 자리에 앉아 우재를 무릎에 앉히고, 창밖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저건 산이야. 저건 강이야.”
우재가 듣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매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청주, 수요일과 금요일은 목포. 하루 이동 거리가 이백 킬로미터를 넘는 날도 있었다.
가방 안에는 늘 같은 것들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는 관과 주사기였다. 요즘은 작은 숟가락과 이유식 통 하나로 줄었다. 그것만으로도 가방이 가벼워졌다는 걸, 그녀는 손잡이를 쥘 때마다 느꼈다.
레일이 규칙적으로 덜컹였다. 창밖으로 논이 지나가고 다리가 지나가고, 다시 산이 나타났다.
“저건 산이야.”
그 말을 하는 순간, 우재의 고개가 천천히 그녀 쪽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숨을 멈췄다.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먼저 떠오른 생각은 따로 있었다. 내일도 이 자리, 이 칸에 앉아야겠다는 것.
기차가 청주역에 닿기 전, 한 번 더 정차했다. 그녀는 우재의 담요를 고쳐 덮으며, 자신이 아직 아침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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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매일 네 살 아들과 기차에 오르는 엄마의 사연 — CBS노컷뉴스, 2026-09-13
한 줄 요약: 염색체 이상으로 발달이 더딘 네 살 아들의 재활치료를 위해, 한 어머니가 4년째 매주 기차로 청주와 목포를 오가며 하루 200km 넘는 거리를 이동하고 있다.
작가의 말
기사에는 아이의 이름만 있었다. 어머니의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여백이 오히려 이 이야기를 정확히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이름은 바꿨고, 창밖 풍경의 이름을 대신 불러주는 습관은 내가 지어 얹었다. 아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도 기사에는 없는, 내가 상상한 장면이다 — 그 상상 속에서도 그녀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눈물이 아니라 “내일도 이 자리”였다. 그게 이 여정의 진짜 얼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