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통

팬트리 안쪽에서 쌀통을 꺼냈다. 스무 해도 더 전, 첫 방송 계약금으로 산 물건이었다. 뚜껑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손등으로 한 번 쓸어내리자 재채기가 났다. 이 통에 쌀을 채운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쉰이 되던 해, 이십삼 년 다니던 방송국 일이 끊겼다. 공모전 두 곳에서 떨어졌다. 이력서를 서른 곳 넘게 넣었다. 서빙도, 건물 청소도, 공장 생산직도 넣어봤다. 경력이 안 맞거나 나이가 많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답장이 오지 않는 것으로 결과를 짐작했다.

중고거래 앱을 열었다. “쌀통 나눔합니다.” 쓰고 지웠다. “상태 양호한 쌀통, 나눔해요.” 또 지웠다. 스무 자 남짓한 문장 하나를 다섯 번 고쳤다. 대본 한 줄에 밤을 새우던 버릇이, 이십삼 년이 지나도 손끝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올린 지 일 분. 알림음이 연달아 울렸다. 스무 개, 서른 개. 화면이 미어졌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많이,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한 게 얼마 만인지 셀 수 없었다.

약속한 놀이터 앞에 아이 업은 여자가 먼저 나와 있었다. 쌀통을 받아 안으며 여자가 말했다. “이거 진짜 필요했어요, 감사합니다.” 여자는 몰랐을 것이다. 그 말을 더 오래 기다린 쪽은, 쌀통을 건넨 사람이었다는 걸.

집으로 오는 길, 통장 잔고는 그대로였다. 달라진 숫자는 없었다. 다만 저녁이 되자 배가 고팠다. 며칠 만이었다. 쌀통 없이도, 저녁은 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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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구직에 실패한 주부가 무가치함과 싸우다 한 일 — 오마이뉴스, 2026-08-14

한 줄 요약: 23년간 방송작가로 일하다 쉰의 나이에 일이 끊긴 한 여성이, 수십 곳의 이력서와 면접에서 거절당한 끝에 안 쓰는 쌀통을 중고거래 앱에 나눔하며 오랜만에 “쓸모 있는 존재”라는 감각을 되찾은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말

이 기사를 읽다 걸린 건 “쓸모”라는 단어였다. 필요했던 게 일자리도 돈도 아니라 인정이었다는 문장. 그리고 그 인정이 하필 20만 원짜리 물건을 공짜로 내주는 자리에서 왔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그녀가 나눔 글 한 줄을 몇 번이나 고쳐 썼을지 상상했다. 문장 하나에도 손이 멈추는 버릇, 그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직업의 흔적을 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