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눈을 뜨면 먼저 마당으로 나갔다. 밀짚모자를 쓰고, 젖은 수건을 목에 둘렀다. 마당의 흙은 밤사이 식어 있었지만 아침 공기는 벌써 뜨거웠다. 라디오에서 폭염주의보가 흘러나오는 동안 할머니는 이미 대문을 나서고 있었다.
밭은 집에서 오 분 거리였다. 백 년을 다닌 길이라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었다.
아들은 어제도 전화로 말했다. “엄마, 오늘은 그냥 집에 계세요.” 할머니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밀짚모자를 썼다.
방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무릎이 먼저 뻣뻣해졌다. 흙을 만지고 있어야 손끝이 제 것 같았다. 할머니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가 더위보다 길었다.
오후 네 시, 며느리가 전화를 세 번 걸었다. 받지 않았다. 네 번째 신호음 끝에 차 키를 챙겼다.
고랑 사이에 할머니가 엎드려 있었다. 손에는 뽑다 만 것이 아직 쥐어져 있었다.
그날 낮 최고기온은 삼십사도 칠 부였다. 발견 당시 체온은 사십이도 이 부였다.
장례가 끝나고 며느리는 집을 정리하다 냉장고를 열었다. 씻어서 물기를 뺀 것들이 채반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흙냄새는 이미 다 씻겨나가고 없었다. 옆에는 빈 상자와 테이프, 다 쓰지 못한 송장 한 장. 며느리는 상자를 오래 들여다봤다.
받는 사람 칸에는 아들 이름이 이미 적혀 있었다.
보내는 사람 칸은 끝내 비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100세 할머니, 폭염 속 밭에서 숨진 채 발견… 체온 42.2도 — 인사이트, 2026.07.26
한 줄 요약: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 백 살 할머니가 밭일을 하다 숨진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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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체온 42.2도와 그날 낮 최고기온 34.7도, 이 두 숫자 사이의 거리를 오래 생각했습니다. 백 살이 되어서도 밭에 나가야 했던 이유가 단지 습관만은 아니었을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가만히 있는 하루가 더 무서웠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서, 그리고 끝내 완성되지 못했을 상자 하나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