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는 아침 열 시, 리어카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제기동 골목이 빗물로 번들거렸다. 리어카에는 어제부터 모은 상자가 쌓여 있었다. 라면 박스, 택배 상자, 우유팩. 다 합쳐도 스무 킬로가 안 됐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순자는 걸음을 멈추고 허리춤에서 접어둔 비닐을 꺼냈다.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다. 귀퉁이가 삭았지만 아직 물은 안 샜다.
순자는 그 비닐을 상자 더미 위에 씌웠다. 자신의 어깨가 아니라, 종이 위에.
우비는 있었다. 작년에 아들이 사다 준 노란 우비. 신발장 안에 그대로다. 리어카에 실으면 상자 하나 자리가 준다고, 순자는 그렇게만 말했다.
약령시장 초입에서 한약 냄새가 빗물에 섞여 올라왔다. 우산 쓴 청년이 걸음을 멈추고 리어카를 밀어주겠다고 했다. 순자는 손을 저었다.
“됐어요.”
청년이 휴대폰을 꺼냈다. 사진 한 장만, 좋은 뜻으로. 순자의 목소리가 순간 날카로워졌다.
“장난으로 보여요? 찍지 마요.”
청년은 당황한 얼굴로 돌아섰다. 순자는 다시 리어카를 밀었다. 빗물이 이마를 타고 눈썹에 고였다.
고물상 저울 위에 상자를 올렸다. 젖은 종이는 킬로에 삼십오 원. 맑은 날의 절반이었다.
주인이 만이천 원을 건넸다. 순자는 돈을 속주머니에 넣고, 비닐을 다시 접어 허리춤에 찔러 넣었다. 내일도 쓸 것이었다.
종이는 젖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순자에게도 우비가 있었다. 신발장 안에서, 마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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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젖은 폐지는 감량, 1만원 벌기 힘들다”…장마가 두려운 ‘폐지 수집 노인들’ — 뉴스핌, 2026년 7월 21일
한 줄 요약: 장마철 빗물에 폐지 가격이 20~40% 떨어지면서, 평균 78세 폐지 수집 노인들의 하루 벌이가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이천~삼천 원대로 떨어졌다.
작가의 말
기사 속 한 노인은 도와주겠다는 말에 “사진 찍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그 문장이 오래 남았습니다. 동정받기를 거부하는 자존심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궁금해서, 비 오는 날 자신이 아니라 종이부터 감싸는 손을 상상해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