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 문을 열면 냉장고 도는 소리가 먼저 들린다.
흰 국화 한 송이 주세요. 그가 말했다. 한 송이요? 젊은 주인이 되물었다. 네, 한 송이. 그는 늘 그렇게 말했다.
주인은 이 손님을 안다. 이름은 모른다. 텔레비전에서 나쁜 일이 생기면 며칠 안에 그가 온다. 진주에 불이 났을 때 왔고, 산에 불이 크게 났을 때 왔고, 먼 나라가 흔들렸을 때 왔다. 늘 흰 국화 한 송이. 늘 값을 치르고, 거스름돈은 받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 그는 전단지 뒷면에 먼저 썼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손이 떨려 줄이 휘었다. 세 번을 고쳐 쓰고서야 흰 종이에 옮겼다. 베네수엘라. 가본 적 없는 나라다. 지도에서 어디쯤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거기서 사람이 죽었다.
편지 끝에 그는 날짜를 적지 않았다. 이름도 적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썼다. 2026년 7월 어느 날.
봉투에 지폐를 넣었다. 몇 달을 접어둔 돈이었다. 그 위에 국화를 얹었다.
사랑의열매 사무국 앞. 문이 열리기 전에 그는 그것을 내려놓았다. 누가 나오기 전에 돌아섰다. 국화 냄새는 옅고, 끝이 조금 쓰다.
돌아가는 길에 그는 다시 베네수엘라를 생각했다. 이름 모르는 사람들. 그가 결코 만나지 못할 사람들. 그래도 누군가는 그들 몫의 꽃을 놓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한 송이라도.
한 송이는 늘 모자랐다. 그는 그걸 알면서도 한 송이만 샀다. 모자란 채로, 다음에 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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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베네수 지진 보탬 되고파”…500만원 놓고 떠난 기부천사 — 국민일보, 2026년 7월 14일
한 줄 요약: 재난이 있을 때마다 흰 국화 한 송이와 손편지를 남기고 이름 없이 사라지는 익명 기부자가, 이번엔 베네수엘라 지진 희생자를 위해 500만 원을 놓고 갔다.
작가의 말
국화 한 송이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돈만 놓고 가도 될 텐데, 그는 꽃을 함께 놓습니다. 그것도 여럿이 아니라 한 송이. 흰 국화는 장례의 꽃입니다. 만난 적 없는 먼 나라 사람들의 죽음 앞에, 그는 조문객이 되기로 한 것 같았습니다.
이름을 적지 않는 사람은 감사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이름 대신, 떨리는 손과 세 번 고쳐 쓴 문장을 상상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정성 — 그것이 이 사람의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