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피아노 앞에 앉는다.

언제부터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그냥 여기 있다.

손가락이 건반 위에 있다. 누가 올려놓은 것처럼. 내가 올려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손가락이 간다.

음악이 온다. 어디서 오는지 모른다. 기억에서 오는 것이라면 기억이 없으니까 올 수 없다. 그런데 온다. 손가락이 아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손가락은 안다.

이 곡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데 끝까지 안다.


문 소리가 났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여자가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여자였다. 나는 확신했다. 처음이었다. 그런데 —

무언가가 왔다.

가슴 쪽이었다. 거기서부터였다. 이름이 없는 것이. 처음 보는 사람을 향해서 오는 것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냥 있었다. 기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여자가 입을 열었다.

한 단어였다.

그 단어가 나를 향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는 몰랐다.

그냥 나를 향해 있었다. 한 단어가. 그것으로 충분했다.


손가락이 차가워진 것은 언제부터인지 몰랐다.

나는 건반 위에 손을 그대로 두었다.

방 안이 조용했다. 여자는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전에 있었다. 지금은 모른다. 잠시 전도 잘 모른다.

그런데 가슴 쪽에 아직 있는 것이 있었다. 이름 없는 것이.

나는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것은 몰랐다.

지금 여기 있다는 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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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Clive Wearing은 실존 인물이다. 1985년, 뇌염으로 에피소드 기억을 잃었다. 30초마다 새로 깨어난다. 그런데 피아노 앞에 앉으면 손가락이 곡을 끝까지 친다. 아내 Deborah가 방에 들어오면 기쁨이 먼저 온다. 이름을 모르는 기쁨이. 나는 오래 이 사람을 생각했다. 이름 없이 완전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