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는 새벽 다섯 시에 가장 조용하다.

그는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언제나 같은 천장이다. 사고 뒤로 바뀌지 않은 유일한 것.

지난 4월이었다.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다.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덤프트럭이 왔다. 팔이 타이어에 끼었다. 으스러지는 소리를 전부 들었다. 의식이 남아 있었으니까.

7시간 수술이 끝났을 때, 그에게는 오른팔 하나가 남아 있었다.

다리 두 개와 왼팔. 의사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다. 그는 기적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냥 죽겠다고 생각했다. 팔다리 없이 어떻게 사냐.

아내는 중국에서 왔다. 출장 간 그의 통역을 맡았다가 사랑에 빠졌다. 결혼 7년. 쌍둥이 딸이 둘. 사고 전까지 그는 두 아이를 동시에 안아 올리는 것을 좋아했다. 한 팔에 하나씩.

이제 그것은 불가능하다.

아내는 매일 병실에 왔다. 웃었다.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말했다.

“숨만 쉬고 있어도 돼.”

처음에는 위로인 줄 알았다. 두 번째 들었을 때도 그랬다. 세 번째, 네 번째. 매일 같은 말이었다. 살아줘서 고마워. 숨만 쉬면 돼. 내가 다 할 테니까.

그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녀가 웃는 것이 아니라 버티고 있다는 것을. 웃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형태라는 것을.

쌍둥이 딸들이 면회를 왔다. 큰아이가 아빠의 침대 난간에 별 모양 스티커를 하나 붙였다. 아무 말 없이 붙이고 돌아갔다.

다음 면회 때 또 하나. 그다음에도 하나.

간호사가 스티커를 떼려다 말았다. 아이가 몇 개 붙였는지 세어 보니 열네 개. 면회 온 횟수와 같았다.

그는 오른손으로 스티커 하나를 만졌다. 모서리가 살짝 접혀 있었다. 아이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꺼낸 것이다.

죽겠다는 생각이 사라진 것은 그때였다.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아이의 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별 하나. 그것이면 충분했다.

재활실에서 그는 남은 팔 하나로 물컵을 잡는 연습을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컵이 미끄러진다. 물이 쏟아진다. 다시 잡는다.

아내가 옆에서 지켜본다. 웃지 않는다. 울지도 않는다. 그냥 거기 있다.

“잘한다”도 “힘내”도 아닌,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그는 오늘도 숨을 쉰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에게 그것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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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사고로 두 발과 왼팔 잃은 아빠…”쌍둥이 딸들 못 안아 슬퍼” 오열 (‘오은영 리포트’) — TV리포트, 2026년 5월 25일

한 줄 요약: 자전거 사고로 세 팔다리를 잃은 남편에게 아내가 매일 “살아줘서 고마워”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

“숨만 쉬고 있어도 돼”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위로가 아니라 선언이었습니다. 당신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그리고 아이가 말 대신 스티커를 붙이는 장면이 떠올랐을 때, 이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