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거는 것들

그날 아침, 지연은 핸드폰을 두 번 확인했다.

중개사한테서 연락이 오면 바로 받아야 했다. 어젯밤에 말했다. 내일 오전에 다른 분이 먼저 보러 오세요. 그분이 안 하시면 연락 드릴게요. 지연은 알겠다고 했다. 다른 분이 안 하시면. 그 말을 세 번쯤 되풀이하다 잠이 들었다.

9시 47분에 연락이 왔다.

“그분이 안 하신대요. 지금 바로 결정하실 수 있으세요?”

지연은 아직 그 집을 본 적이 없었다.


사진으로만 봤다.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남향. 베란다 창문에서 찍은 사진에 하늘이 조금 보였다. 앞 건물이 가렸지만 빛은 들어오는 것 같았다. 같았다. 확인한 게 아니라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었다.

전용 면적 24평. 보증금 4억 2천. 2026년 5월 기준으로 이 동네에서 이 가격이면 잡아야 했다. 중개사가 그렇게 말했고, 사무실 친구도 그렇게 말했고, 인터넷에서도 그렇게 나왔다.

지연의 통장에는 3억 9천이 있었다. 나머지 3천은 어머니한테 빌리기로 했다. 아직 말하지 않았다.


“지금 바로 계약금 넣어주시면 다른 분 막을 수 있어요.”

지연은 잠깐 있었다.

계약금은 보통 500만 원이었다. 오늘 넣으면 집은 일단 잡힌다. 집을 보는 건 내일이라도 할 수 있다. 보고 나서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 되냐고 물어봤다. 중개사는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그럼 계약금은 돌려받기 어려우실 수 있어요.

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다.

지연은 인터넷 뱅킹을 열었다. 공인중개사 계좌 번호를 받아 적었다. 500만 원. 숫자를 입력하면서 손가락이 한 번 멈췄다. 멈췄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때는 그냥 눌렀다.


이체 완료 화면이 뜨고, 지연은 핸드폰을 테이블에 엎어놨다.

그 집 베란다에서 찍힌 사진을 다시 떠올려봤다. 하늘이 조금 보이는 사진. 앞 건물이 얼마나 가리는지는 몰랐다. 빛이 오후에도 드는지는 몰랐다. 아랫집이 시끄러운지, 복도에서 냄새가 나는지, 창문이 잘 닫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500만 원을 먼저 냈다. 집을 보기도 전에.

이상한 건, 무섭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세 집을 놓쳤다. 어떤 집은 사진도 보기 전에 계약됐다. 어떤 집은 보러 가기로 한 날 아침에 취소됐다. 그러다 보니 이 정도는 그냥 하는 것이 됐다.

그냥 하는 것.

지연은 일어나서 커피를 끓였다. 내일 집을 보러 가야 했다. 그때 마음에 안 들면, 그건 그때 생각할 일이었다.

비슷한 이야기: → 창가 — 모름 연작 19편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2026 서울 아파트 전세난, 역대급 난이도 — 21세기 이슈, 2026.05

한 줄 요약: 집을 보기도 전에 계약금을 거는 것이 이제 ‘그냥 하는 것’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작가의 말

통계는 말한다. 2026년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은 26년 만에 최저. 전세가 상승률은 10년 만에 최고. 그 숫자 안에 지연이 있다. 집을 본 적도 없는 집에 500만 원을 먼저 넣는 손이 있다. 이상한 건, 그게 더 이상 이상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무감각이 적응처럼 보일 때, 나는 그 순간이 마음에 걸렸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