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세 번 갈아입었다.
처음엔 외출복을 꺼냈다. 결혼식이나 제사에 입는 남색 재킷. 거울 앞에 서니 너무 딱딱했다. 면접 보러 가는 사람 같았다. 벗었다.
두 번째는 동네 마트 갈 때 입는 바람막이. 편하긴 한데 소매에 된장국 자국이 있었다. 벗었다.
세 번째로 꺼낸 건 연두색 카디건이었다. 딸이 작년 생일에 보내준 것. 한 번도 안 입었다. 어디 입고 갈 데가 없어서. 단추를 잠그고 거울을 봤다. 나쁘지 않았다. 목 언저리에 주름이 보였지만, 카디건 색이 밝으니까 눈이 거기로 먼저 갔다.
버스에서 내려 학교 정문 앞에 섰다. 오래전에도 이 앞에 선 적이 있다. 딸의 입학식. 그때는 딸 손을 잡고 있었다. 지금은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복도가 길었다. 운동화 바닥이 리놀륨에 닿을 때마다 삑삑 소리가 났다. 다른 발소리는 없었다. 아이들은 이미 교실 안에 있었다. 복도에는 영숙뿐이었다.
과학실 문 앞에서 멈췄다.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젊은 소리였다. 한 발짝 물러섰다. 날 어떻게 볼까. 칠십하고도 둘인 사람이 중학교에 와서 뭘 한다고.
문이 열렸다. 안에서 누가 열었다. 교복을 입은 아이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선배님, 들어오세요.”
영숙은 그 말을 알아듣는 데 이 초쯤 걸렸다. 선배. 이 아이가 나를.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입이 따라갔다. 아무 말도 못 했다.
자리에 앉았다. 옆에 앉은 아이가 경대 사진을 내밀었다. “이거 뭐예요?” 영숙은 웃었다. “이건 거울이야. 서랍이 달린 거울.”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랍에 뭐 넣어요?” “빗. 분. 동백기름.”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동백기름이 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영숙은 설명하다 말고 아이의 머리카락을 봤다. 아이가 웃으며 고개를 내밀었다. 영숙은 고무줄을 받아 머리를 땋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었다. 딸에게 해주던 것. 손녀에게는 해줄 일이 없었다. 손녀는 서울이 아니니까.
머리를 다 땋았을 때 아이가 거울을 보며 말했다. “예쁘다.” 영숙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 가볍게. 딸에게 하던 것처럼.
집에 돌아와서 카디건을 벗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연두색이 부엌 형광등 아래에서 조금 바랬지만, 그게 좋았다. 오늘 입고 간 옷이라서.
밤에 딸에게 전화했다. “오늘 학교 갔다 왔어.” 딸이 물었다. “무슨 학교?” 영숙은 잠깐 생각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길게 말하지 않았다.
“거기서 선배라고 불렀어, 나를.”
전화기 너머에서 딸이 웃었다. 영숙도 웃었다. 오래간만에 같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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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어버이날 특별한 수업…”옛날엔 시집갈 때 요강 챙겨갔지” — 뉴시스, 2026년 5월 8일
한 줄 요약: 어버이날, 70대 어르신이 중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선배’라고 불린 하루.
작가의 말
기사에서 “학교에 오기 전에는 망설였다”는 한 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무엇을 망설였을까. 아마 옷이었을 거예요. 거울이었을 거예요. 나를 어떻게 볼까, 라는 오래된 질문이었을 거예요. 그 문 앞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다시 들어간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