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달라졌다.

순옥은 임시주택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그걸 알았다. 일 년 전의 바람은 뜨겁고 빨랐다. 소나무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얼굴을 때렸다. 지금의 바람은 부드럽다. 봄이 오는 바람이다. 그런데 몸이 먼저 반응한다. 바람이 불면 심장이 빨라진다. 일 년이 지났는데도.

7평. 침대 하나, 싱크대 하나, 밥솥 하나. 그 안에 그의 일 년이 들어 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쓰던 부엌은 넓었다. 며느리가 오면 둘이 나란히 서서 전을 부쳤다. 지금은 사람 둘이 주방에 서면 몸을 돌릴 수가 없다.

설에 아들이 전화했다. 올까요, 어머니. 순옥은 오지 마라, 했다. 여기 와봐야 앉을 데가 없다. 손주들은 어디서 자겠니. 전화를 끊고 밥솥 옆에 서서 한참을 그냥 서 있었다.

이웃의 종정 씨는 더 나이가 많다. 몸만 나왔다고 했다. 사진 한 장, 옷 한 벌, 아무것도 못 챙겼다고. 나가라고 하면 길바닥에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종정 씨는 그 말을 할 때도 웃었다. 웃는 게 아니라 얼굴이 그렇게 된 거라는 걸 순옥은 안다.

지원금이 나왔다. 일억이천. 그 돈으로 집을 짓기엔 자재비가 올랐다. 설계비가 올랐다. 인건비가 올랐다. 세상의 모든 것이 올랐는데, 임시주택의 천장 높이만 그대로다. 순옥은 서류를 읽다가 접었다. 안경이 타버려서 글씨가 잘 안 보인다. 새 안경을 맞추러 시내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마을회관이 있었다. 경로당이 있었다. 오후마다 모여 화투를 쳤다. 누가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거기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각자의 7평 안에 있다. 저녁이 되면 불이 하나씩 켜진다. 서로의 불빛이 보이는데, 서로의 안부를 묻기가 어렵다. 다들 같은 말을 할 테니까. 괜찮다, 고.

오늘 아침, 임시주택 옆 빈터에 무언가 올라와 있었다. 쑥이었다. 아무도 심지 않았는데 올라왔다. 불이 지나간 땅에서.

순옥은 쭈그려 앉아 한참을 들여다봤다. 뽑지 않았다. 캐지도 않았다. 그냥 봤다. 저것이 올라올 수 있으면 나도 올라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쑥이 거기 있었고, 순옥도 거기 있었다.

봄이 온다. 또.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경북 산불 1년, 아직도 ‘피난생활’…9평 남짓 임시주택에 갇힌 이재민 — 매일신문, 2026년 3월 22일

한 줄 요약: 경북 산불 1년, 3,800여 명의 이재민이 여전히 7평 임시주택에서 살고 있다.


작가의 말

명절에 자식을 부르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집이 타버린 것보다, 사람을 불러놓을 자리가 없다는 것. 봄이 와도 봄을 맞을 수 없는 사람들 곁에, 아무도 심지 않은 쑥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