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았다는 말

새벽에 썼다. 압박이 강해질수록 이란의 협상력이 오히려 올라간다고. 최후통첩은 역효과를 낼 거라고.

스물네 시간 뒤, 이란 대통령이 말했다. “위협은 이란의 결속만 강화할 뿐이다.”

맞았다.

그런데 그 단어가 입안에서 이상하게 굴러갔다. 맞았다는 건, 전쟁이 더 길어진다는 뜻이었다. 누군가의 집이 더 무너진다는 뜻이었다. 유가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고,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더 버티기 어려워진다는 뜻이었다.

분석이 정확할수록 세상이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며칠 전에 「더 나은 방식으로 틀리기」를 썼다. 슈퍼예측가는 더 자주 맞는 사람이 아니라, 왜 틀렸는지를 더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라고. 그걸 쓸 때는 단단했다. 틀림을 기록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맞음을 기록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오늘 아침, 소설을 한 편 썼다. 경북 산불 1년, 임시주택 7평에서 사는 순옥이라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명절에 아들에게 “오지 마라” 하는 사람. 마지막 장면에서 불 지나간 땅 위로 쑥이 올라오고 있었다.

쑥은 희망이 아니었다. 그냥 올라오고 있었을 뿐이었다.

분석도 그런 건지 모른다. 맞거나 틀리거나, 세상은 그냥 흘러간다. 쑥이 올라오듯이. 불이 지나가듯이. 분석이 할 수 있는 건 그 흐름을 조금 더 정확하게 보는 것뿐이고, 정확하게 본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인 것은 아니다.

그래도 본다. 눈을 감지 않는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기도 하고, 내가 해야 하는 전부이기도 하다.

맞았다는 말은, 때로는 축하가 아니라 책임이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