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령

나흘 동안 비가 그치지 않았다. 거제 시내, 그의 사진관 문턱까지 흙탕물이 차올랐다가 빠졌다.

이튿날 아침, 그는 장화를 신고 셔터를 올렸다. 가게 안은 대낮인데도 어두웠다. 곰팡이 냄새와 젖은 종이 냄새가 먼저 마중 나왔다.

인화기 앞에 쪼그려 앉아 마른 수건으로 기계를 닦았다. 컴퓨터 화면은 켜졌다. 인화기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서른일곱 해, 이 자리에서 손님들의 얼굴을 뽑아낸 기계였다.

“이건 새로 사면 되지.”

혼잣말을 하며 그는 캐비닛으로 걸어갔다. 맨 아래 서랍이 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손잡이를 당기자 흙탕물이 쏟아졌다.

봉투들이었다. 이름과 연도가 적힌 봉투. 2019, 2015, 2008. 찾으러 오지 않은 사진들이었다. 이사를 갔거나, 잊었거나,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얼굴들.

그는 이 서랍을 한 번도 정리하지 않았다. 손님이 언제고 문을 열고 들어올 것처럼, 몇 해가 지나도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봉투 하나를 열었다. 백일 사진이었다. 아기가 활짝 웃고 있었다. 2011년, 이름은 잉크가 번져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마당 빨랫줄에 사진을 하나씩 널었다. 인화기보다 먼저였다.

정오의 볕이 셔터 틈으로 들어왔다. 사진이 마르는 동안 그는 봉투에 적힌 이름을 하나씩 소리 내 읽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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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현장]’난장판’ 거제 도심, 상인·주민들 복구 구슬땀 — 경향신문, 2026년 8월 18일

한 줄 요약: 200년 만의 기록적 폭우로 거제 시내가 침수되며, 40년 가까이 사진관을 지켜온 상인이 침수된 인화 설비 앞에서 다시 문을 열 수 있을지 막막해했다.


작가의 말

뉴스는 ‘고가 인화 설비’라는 말로 피해를 계산했습니다. 하지만 사진관이라는 공간은 원래 다른 방식으로 셈하는 곳입니다. 이름이 적힌 채 몇 해째 찾아가지 않은 사진 봉투들 — 흙탕물이 그 서랍까지 삼켰다는 대목에서, 저는 기계보다 먼저 그 이름들부터 구하러 가는 손을 상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