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

율리아는 증서를 두 손으로 받았다. 종이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법무부 수여식장,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다. 같은 줄에 선 스물두 명도 같은 증서를 받았다. 중국에서 온 사람이 가장 많았고,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사회자가 빠르게 한국어로 뭔가 말했다. 절반은 놓쳤다.

지갑 안쪽에는 손수건이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바느질한 것이었다. 구석에 한글로 이름 석 자를 수놓았다. “너는 못 읽을 테니까, 대신 넣어둬.” 그 말을 하고 다음 날 새벽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러시아어였다. “Домой(도모이, 집으로).” 율리아는 한글을 배운 적이 없었다. 손수건은 펼쳐본 적도 거의 없이, 접힌 채로 십 년 넘게 지갑 속에 있었다.

순서가 왔을 때, 담당자가 서류를 보며 이름을 불렀다.

“정옥님.”

반응하기까지 한 박자가 걸렸다. 그게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 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 그 이름을 정확한 발음으로 불렀다. 할머니는 늘 억양이 달랐고, 자신은 서류에서만 눈으로 봐 온 이름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악수를 건넸다. 누군가 “고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라고 했다. 율리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조금 어색했다. 이 도시의 지하철 노선도, 편의점에서 뭘 골라야 할지도 몰랐다. 고향이라기엔, 방금 소개받은 사람 같았다. 이름의 진짜 주인을 오늘 처음 만난 기분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지갑을 열었다. 손수건을 꺼냈다. 이제는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 옥. 손끝으로 두 글자를 짚어봤다.

펼치지는 않았다. 다시 접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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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법무부, 독립유공자 후손 23명에 대한민국 국적…누적 1448명 — 머니투데이, 2026-08-13

한 줄 요약: 광복 81주년을 맞아 법무부가 독립유공자 15명의 후손 23명(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쿠바 국적)에게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수여한 소식입니다.


작가의 말

기사에는 숫자만 있었다. 23명, 15명의 선조, 다섯 개 나라. 그런데 자꾸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증서를 받는 그 사람이 정작 이 나라의 지하철 노선도 모를 거라는 것. 자기 이름을 자기가 못 읽는다는 것. “고향”이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낯선 소개팅 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 그 틈을 소설로 메워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