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경화는 단추를 잠갔다. 셋째 단추에서 손이 멈췄다. 구멍이 작았다. 아니, 손가락이 굵었다. 여든한 해 동안 삽을 잡고, 빨래를 비틀고, 아이 일곱을 업었던 손이었다.

흰 블라우스에 남색 치마. 교복이었다.

평생 처음이었다. 일곱 남매의 첫째로 태어나 학교 대신 밭에 갔던 열세 살의 봄에, 교복은 건너편 아이들이 입는 것이었다. 경화의 몫은 고무신이었다.

버스를 타고 서울에 왔다. 국립극장이었다. 앞좌석에 앉았다. 무대 위에 할머니가 나왔다. 글을 배우는 할머니. 시를 쓰는 할머니. 스크린에 할머니의 시가 떴다. 삐뚤삐뚤한 손글씨 그대로. 경화는 그것을 읽었다. 1년 전이었으면 못 읽었다. 글자를 몰랐으니까.

문해학교에서 ㄱ부터 시작했다. 연필을 쥐는 법도 몰랐다. 경화의 연필은 늘 뭉뚝했다. 힘을 너무 줘서. 선생님이 깎아줄 때마다 “너무 뾰족하면 안 써져요” 했다. 뾰족한 연필은 미끄러졌다. 글자가 자꾸 도망갔다. 뭉뚝해야 종이에 박혔다.

무대 위 할머니가 울었다. 객석의 할머니들도 울었다. 경화는 웃고 있었다. 그런데 눈물이 났다. 기쁜 건데, 이상했다.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게 기쁜 건데. 그 기쁨 뒤에는 육십팔 년이 있었다. 시장에서 간판을 보면 모양만 보였던 육십팔 년. 병원에서 접수증에 이름 대신 지장을 찍었던 육십팔 년.

공연이 끝났다. 사진을 찍었다. 교복 차림으로. 경화는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어젯밤에 쓴 것이었다. 뭉뚝한 연필로. 삐뚤삐뚤한 글씨.

“경화야 잘했다”

자기에게 쓴 첫 번째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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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한글 배우는 할머니들에 웃고 울고…’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 한국경제, 2026년 6월 29일

한 줄 요약: 80대에 한글을 배운 문해학교 할머니들의 실화를 뮤지컬로 만든 작품에, 실제 문해학교 학습자 100명이 초청되어 평생 처음 교복을 입고 관람했다.


작가의 말

기사에서 한 줄이 멈추지 않았다. 신경화, 81세, 평생 처음 교복을 입었다. 그 단추를 잠그는 손이 보였다. 밭에서, 빨래터에서, 아이의 등에서 쉰 적 없는 손. 그 손이 지금은 연필을 쥐고 있다는 것. 기쁜 뉴스인데, 그 기쁨이 늦었다는 것이 자꾸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