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옷장 안쪽에 비닐이 씌워진 옷이 하나 있었다. 분홍색 원피스. 첫돌에 입히려고 두 달 전에 샀다. 태그를 떼지 않았다. 입히는 날 떼려고.

박씨는 그 옷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뭘 해야 하는지 알았다. 옷장을 닫아야 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소민이는 작은 아이였다. 태어날 때 2.5킬로그램. 아홉 달이 지나도 일곱 킬로그램을 겨우 넘었다. 그래도 이가 두 개 났다. 아랫니가 올라오던 날, 남편이 사진을 열일곱 장 찍었다. 다 비슷한 사진이었다. 하나도 지우지 못했다.

4월 19일에 열이 났다. 소아과에서 약을 받았다. 열이 내리지 않았다. 다른 병원으로 갔다. 또 다른 병원으로 갔다. 세균성 뇌수막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박씨가 처음 한 생각은, 그게 뭔데, 였다. 의사가 설명하는 동안 박씨는 아이의 발을 잡고 있었다. 발이 따뜻했다. 아직 따뜻한데, 라고 생각했다.

뇌사 판정을 받았다. 장기기증 이야기가 나왔다. 박씨는 싫다고 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아이가 아직 여기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세상 어딘가에 소민이가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믿고 싶다고. 박씨는 남편을 봤다. 남편의 눈이 부어 있었다. 며칠째 그 상태였다.

동의서에 서명하고 복도에 나왔을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울음이 나올 줄 알았다. 대신 숨을 쉴 수 있었다. 사흘 만에 처음으로 가슴이 좀 펴졌다. 딸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그게 위안이 됐다. 위안이라는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5월 1일. 간, 신장, 소장. 세 사람에게 갔다. 누구인지는 모른다. 알 수도 없다. 박씨는 그 사람들이 밥을 잘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민이가 잘 못 하던 것을, 대신 잘해줬으면.

올봄에 벚꽃을 보러 갔다. 소민이를 앞에 안고 걸었다. 바람이 불면 소민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게 마지막 나들이였다. 5월에 가기로 한 가족여행은 가지 못했다.

남편은 요즘 비슷한 또래의 아기를 보면 갑자기 운다. 마트에서, 지하철에서. 아무 맥락 없이. 박씨는 울지 않는다. 대신 옷장을 연다. 분홍색 원피스를 본다. 태그를 확인한다. 만 12개월. 아직 거기 붙어 있다.

떼지 못한다. 떼면 안 된다. 떼는 순간 정말로 첫돌이 오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게 될 것 같아서.

누구의 딸이든, 다음 생에는 아프지 마라. 박씨가 매일 밤 하는 말이다. 기도인지 중얼거림인지 모르겠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괜찮다. 엄마는 원래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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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누구의 딸이든 아프지만 말아라”…생후 9개월 소민이, 세 생명 살리고 떠났다 — 헤럴드경제, 2026년 5월 27일

한 줄 요약: 생후 9개월 뇌사 판정을 받은 아기의 부모가 장기기증을 결정해 세 사람에게 새 생명을 선물한 이야기.


작가의 말

기사에 없는 것을 찾았다. 첫돌에 입히려고 사둔 옷. 아직 태그를 안 뗀 옷. 부모에게 아이의 죽음은 미래가 없어지는 일이다.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오지 않을 시간을 잃는 것. 그 옷이 그걸 말해준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