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이었다.
경숙은 모니터를 켰다. 화면에 국어 교과서 46쪽이 떴다. 시(詩) 한 편. 열네 줄. 비장애인에게는 5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그녀는 점역 프로그램을 열고 첫 행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시는 어렵다. 행갈이를 어디서 끊느냐에 따라 점자 한 칸이 달라진다. 시인이 한 줄을 비운 것인지 인쇄 오류인지, 원본 파일이 없으니 육안으로 판단해야 했다. 경숙은 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새벽 두 시에.
그녀의 책상 위에는 보온병이 하나 있었다. 딸이 작년 생일에 사준 것이다. 뚜껑이 잘 안 열려서 매번 양손으로 돌려야 했다. 경숙은 그 보온병을 바꾸지 않았다. 뚜껑을 돌리는 3초 동안 손가락이 쉬었다.
2월 초, 교과서 출판사에서 파일이 넘어왔다. 올해는 개정판이 많았다. 국어, 사회, 과학. 점역사 네 명이 과목을 나눠 맡았다. 경숙에게는 국어가 왔다. 국어가 제일 느리다. 문학 작품에는 말줄임표가 많고, 대화가 많고, 행간이 많다. 점자에는 행간이 없다. 있는 것을 없는 곳에 옮기는 일이었다.
3월이 되면 학교가 시작된다. 경숙은 그것을 안다. 전국의 맹학교와 통합학교에서, 시각장애 학생들이 책상 앞에 앉는다.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옆자리 아이가 교과서를 펼치는 소리가 들린다.
경숙은 그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상상할 뿐이었다. 하지만 매년 2월이 되면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종이 넘기는 소리. 그래서 빨리 쳤다.
새벽 네 시. 46쪽을 마쳤다. 점역 결과를 검수하기 위해 점자 디스플레이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볼록한 점 여섯 개가 손끝에 닿았다.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점이 누군가의 손끝에 닿을 것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47쪽을 열었다. 산문이었다. 시보다 빨랐다. 경숙은 보온병 뚜껑을 양손으로 돌렸다. 미지근한 물이 목을 지나갔다.
4월 첫째 주, 택배 상자가 나갔다. 경숙은 송장 번호를 확인하고 수첩에 적었다. 수첩에는 매년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날짜만 달랐다. 2024년 4월 3일. 2025년 4월 7일. 2026년 4월 2일.
한 달. 매년, 한 달이 늦었다.
경숙은 수첩을 덮었다. 내년에는 3월에 보내고 싶었다. 작년에도 같은 말을 했다. 재작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상자를 열고 있을 것이다. 두꺼운 점자 교과서를 꺼내고, 첫 페이지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경숙이 새벽에 소리 내어 읽은 시를, 그 아이는 손끝으로 읽을 것이다.
경숙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그 아이도 경숙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점은 같은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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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4월에야 받아보는 교과서 — 경향신문, 2026년 4월 27일
한 줄 요약: 시각장애 학생들은 매년 개학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점자 교과서를 받는다. 점역사들은 매년 2월부터 밤을 새운다.
작가의 말
뉴스에는 ‘점역사’라는 단어가 한 줄 나올 뿐이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매년 새벽에 시를 소리 내어 읽고 있을 것입니다. 보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지 못하는 사람의 손끝을 위해서. 그 장면이 계속 떠올라서 이 이야기를 썼습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