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2026년 한국 사회를 덮었다. 기초연금에서 부동산 정책까지, 지방대학 지원에서 노인일자리 사업까지, 국가는 “모두를 구제하는 대신 거점만 살린다”는 논리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서로 다른 세 장면에서 동시에 드러나고 있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위기의 합리적 관리인지, 아니면 양극화의 다른 이름인지를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노인 1000만 시대, 연금 24조를 썼는데 개인이 받는 돈은 月 35만 원이다
올해 5월 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 고령층 부가조사에서 55~79세 고령 취업자 수가 처음으로 1,012만 5천 명을 넘어섰다. 10년 전(671만 5천 명)과 비교하면 1.5배 가까이 늘었고, 고령층 고용률은 59.5%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정부는 이를 “노인일자리 115만 개 공급”의 성과로 제시하지만, 국민연금연구원이 같은 달 발표한 보고서가 이 숫자의 이면을 드러낸다. 중·고령층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은 52.9세이고, 근로를 희망하는 상한 연령은 73.4세다. 53세에 밀려나 73세까지 일하고 싶다는 뜻인데, 그 사이 20년의 공백을 개인이 스스로 메워야 한다는 구조가 숫자 뒤에 숨어 있다.
왜 지금인가.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26년 현재 21%대로 추정된다. (어제 사회·문화 섹션에서 초고령사회 진입 자체를 다뤘으니, 오늘은 그 이후의 구조적 문제로 들어간다.) 초고령사회 진입 이후 맞닥뜨리는 첫 번째 청구서는 연금 재정이다. 국민연금 5차 재정계산(2023년 발표)은 현행 제도 유지 시 기금이 2040년 적자 전환 후 2055년 완전 소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직전 추계보다 2년 앞당겨진 수치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23년 3,657만 명에서 2044년 2,717만 명으로 약 25% 줄어드는 것으로 추계된다. 돈을 내는 사람은 줄고, 받는 사람은 늘어난다는 구조적 방정식이 현실로 닥쳐온 것이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2026년 기초연금 예산은 국비·지방비 합산 24조 4천억 원으로 역대 최대다. 그런데 개인이 받는 기준연금액은 2026년 1월 기준 월 최대 34만 9,700원이다. 이 금액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친다. 24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이 왜 이렇게 작은 금액으로 쪼개지는가. 기초연금이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에게 ‘얇고 넓게’ 지급하는 보편 지급 모델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대상자가 700만 명을 넘으니 총예산이 아무리 커도 1인당 금액은 구조적으로 낮게 유지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26년부터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 저소득 어르신에게 우선 월 40만 원으로 인상하는 ‘하후상박(소득 낮은 사람은 더 주고 높은 사람은 덜 준다)’식 차등 지급을 도입했지만, 참여연대는 이것이 “상위 수급자의 물가연동을 중단해 재정 절감을 끼워 판 개편”이라고 비판한다.
달의 의심. 24조 원을 쓰는데 한 사람이 받는 돈이 월 35만 원이라는 괴리는, 국가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 얼마씩 줄지”를 못 정해서 방치해온 결과 아닌가. 더 근본적인 의심은 이것이다. 기초연금 개편을 둘러싼 논쟁은 표면적으로는 “저소득층 우선이냐, 보편 지급이냐”이지만, 실제로는 그 배경에 있는 국민연금 고갈(2055년)이라는 더 큰 폭탄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회피의 산물일 수 있다.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이나 지급 연령 조정 같은 본질적 개혁은 표심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 정권이 뒤로 미뤄왔다. 기초연금 예산을 조금씩 늘리는 방식은 그 개혁 실패를 임시방편으로 메우는 대리전이라는 해석이 성립한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 2040년 국민연금 적자 전환 시점이 됐을 때 훨씬 더 큰 청구서가 날아온다.
어디로 가는가. 정년연장 법안(더불어민주당안: 2037년까지 65세로 단계적 연장)이 국회에서 노사 합의 없이 계속 표류하는 한, 52.9세 퇴직~65세 국민연금 수급 사이의 소득 공백은 개인이 저임금 재취업으로 버텨야 하는 구조가 유지된다.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더 내고 더 받기) 논의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달의 판단: 세대 간 부담 배분 갈등(청년 보험료 인상 vs 노인 급여 삭감)은 내년 총선 국면에서 핵심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틀릴 조건: 정년연장이 실제 법안으로 통과되거나,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에 노사정 합의가 이뤄지면 소득 공백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 이 경우 판단을 수정해야 한다.
강남이 내리고 강북이 올랐다 — 그게 서민에게 기회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8월 30일 X(옛 트위터)에 “국민주권정부는 망국적 부동산 투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타파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같은 날 실무형 관료 홍지선이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틀 뒤인 9월 3일, 한국부동산원이 8월 5주차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발표했다. 강남구 -0.41%, 서초구 -0.23%. 둘 다 4주 연속 하락이다. 대통령의 “투기 타파” 선언과 데이터가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같은 발표에 성북구 +0.54%, 중랑구 +0.52%, 노원구 +0.50%가 함께 나온다. 강남이 내려가는 동안 강북과 외곽이 오히려 더 빠르게 오르고 있는 것이다.
왜 지금인가. KB부동산 기준으로 이재명 정부 출범 후 1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14.74% 올랐다. 노무현 정부 초기 1년(11.68%), 문재인 정부 초기 1년(9.41%)보다 높은 역대 최고 수치다. 같은 기간 전셋값 6.77%, 월세 8.99% 상승도 최고치다. “망국적 투기 타파”를 가장 강하게 외치는 정부가 집권 초기 가장 가파른 집값 상승을 기록한 셈이다. 여기에 더해 오랫동안 강남을 중심으로 설명됐던 서울 집값이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가 최근 몇 주 안에 집중해서 나오고 있다. 지금이 방향 전환의 시점인지, 아니면 일시적 노이즈인지를 포착해야 할 때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강남·서초 하락의 원인으로 업계는 보유세 부담 확대와 “2027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완화를 앞둔 차익실현 매물 증가”를 꼽지만, 이는 확정된 인과가 아닌 해석이다. 성북·구로·노원 등이 오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다만 방향성 정황은 뚜렷하다. 강남에서 밀려난 수요가 “그나마 싼” 지역으로 흘러들면서 그 지역이 다음 상승 지역이 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투기 타파”의 다른 축으로 제시된 보편형 공공임대(구 기본주택)는 2027년 예산 6조 2천억 원이 편성됐지만, 구체적인 입주 자격 기준은 이달(9월) 중 발표 예정이다. 이름과 예산은 있고 실체는 아직 없는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지사이던 시절 추진했던 ‘기본주택’도 법적 근거 미비로 첫 삽도 못 뜨고 43억 원의 홍보비만 날린 채 폐기된 전례가 있다.
달의 의심. 강북·외곽이 오르는 것이 무주택 서민에게 진짜 기회인가를 의심해야 한다. 강북이 오르는 것은 서민에게 선택지가 넓어진 것이 아니라, 서울 전역이 순차적으로 상향평준화되면서 도망칠 곳이 좁아지는 과정일 수 있다. 성북 누적 12.44%, 구로 10.24%는 “사다리가 복원됐다”는 근거가 아니라 “사다리의 다음 칸마저 이미 멀어지고 있다”는 근거로도 읽힌다. 보편형 공공임대도 전임 경기도판 기본주택의 재브랜딩이라는 점에서, “이름과 예산만 바뀐 정치적 구호”에 그칠 위험을 구조적으로 안고 있다. 데이터가 어느 방향으로 나오든 “정책은 뜻대로 안 된다”는 결론으로 수렴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방향성 자체의 변화(강남 억제 → 강북 폭등)가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면, 그것이 의도된 효과인지 의도치 않은 부작용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이 정책을 평가하는 첫 번째 기준이 돼야 한다.
어디로 가는가. 강북·외곽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다면 연말까지 “서울 전역 순차 상승, 수도권 외곽과 지방은 계속 침체”라는 이중 양극화 구도가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달의 판단: 9월 발표될 보편형 공공임대 세부 기준이 실질적인 입주 문턱을 낮추지 못하거나 공급 속도가 늦으면, 서민 주거 대안으로서의 공공임대는 다시 구호에 머물 것으로 본다. 틀릴 조건: ①입주 기준이 실제로 큰 폭 완화되고 착공이 빠르게 이뤄지면 시장 심리가 달라질 수 있다. ②대출금리가 추가 상승하면 강북·외곽 매수심리도 함께 꺾여 이 분석 전체가 달라진다.
지방대학 벚꽃엔딩 — 대학이 사라지는 도시들
2008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올해 대학에 간다. 그해 한국의 출생아 수는 46만 5천 명. 2006년 44만 8천 명보다는 많지만, 그 직후부터 시작된 급락의 끝점이 지금이다. 올해 초·중·고 학생 수는 483만 명으로 500만 명선이 무너졌고,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은 29만 686명으로 처음으로 30만 명 아래로 내려왔다. 2026학년도 대학 수시 모집에서 경쟁률 3대1 이하를 기록한 지방 대학이 속출했다. 일부 대학은 경쟁률을 아예 공개하지 않았다 — “미달”이기 때문이다. 이미 교육부는 올해 8월 대구예술대·신경주대·제주국제대·한일장신대를 ‘경영위기대학’으로 공식 지정했다. 선택받지 못한 대학들은 이제 관리 대상이 됐다.
왜 지금인가. 지난달 9일 교육부가 올해 기준 경영위기대학 명단을 처음 공식 발표했다. 이름을 명시해서 공표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이 대학은 살아남기 어렵다”는 신호탄이다. 동시에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 정책의 방향을 사실상 확정한 시점이기도 하다. 글로컬대학(글로벌+로컬의 합성어로, 지역 특화 대학 육성 사업) 30개 지정이 2025년으로 마무리됐고, 지원 대학과 관리 대학 사이의 경계선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그어진 것이다. (2주 전 사회·문화 섹션에서 학령인구 500만 명 붕괴의 초중고 단위 영향을 다뤘다. 오늘은 그 파도가 대학까지 올라온 국면이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정부가 택한 방식은 “선택과 집중”이다. 글로컬대학 30개교에는 각 대학당 5년간 1천억 원을 지원하고, 부산대-부산교대 통합(2027년 출범), 조선대-조선간호대 통합(2027학년도 신입생 모집) 등 거점 통합을 지원한다. 동시에 국가거점국립대(부산대·경북대 등 10개)에는 향후 5년간 4조 원 이상을 투입해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의 7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결과는 이미 데이터로 나타나고 있다. 지방 거점국립대의 수시 경쟁률은 8.65대1로 4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방 내에서도 “선택받은 대학”은 오히려 더 경쟁이 치열해지는 반면, 선택받지 못한 사립대들은 경쟁률 0점대로 속속 쓰러지고 있다.
달의 의심.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슬로건은 지역균형발전처럼 들리지만, 실제 작동 방식은 지방 안에서도 승자독식 서열화를 재생산하는 것 아닌가. 2018년 폐교한 서남대(전북 남원) 사례가 경고를 보낸다. 교수·직원 300여 명 실직, 지역 연간 소득 최대 344억 원 감소, 2년 만에 인구 2천 명 이상 감소, 주변 상권은 “예전의 10분의 1도 안 된다”는 인터뷰가 나왔다. 대학 하나의 소멸은 지역경제 전체의 소멸로 번진다. 거점국립대만 남기고 나머지를 자연도태에 맡기는 것은 “지방 소멸을 막는 정책”이 아니라 “지방 소멸을 거점 도시 단위로 관리 가능한 규모로 축소하는 정책”에 더 가깝다. 한국은행 추정에 따르면 전국 대학 입학정원이 8만 3천 명 감소할 경우 지역 소득 약 220억 원, 취업자 수 720명이 줄어든다. 대학은 교육 기관이기 이전에 지방 중소도시의 앵커 기관이다.
어디로 가는가. 2040년 대입자원은 약 28만 명으로 전망된다. 현재 전국 대학 입학 정원(약 49만 3천 명)의 절반 수준이다.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 — 진짜 절벽은 초저출산이 기록되기 시작한 2019~2023년생 코호트가 대학에 도달하는 2038~2041년에 온다. 지금의 “벚꽃엔딩”은 그 절벽 이전에 이미 시작된 1차 붕괴다. 달의 판단: 경영위기대학으로 지정된 지방 사립대 상당수가 향후 5년 안에 통폐합이나 폐교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고, 거점국립대로의 쏠림은 심화될 것으로 본다. 이는 지방 청년의 고등교육 접근성과 계층 이동 기회를 지역에 따라 차등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틀릴 조건: 지역협약정원제·지역이전기업 채용 연계가 실제로 작동해 비거점 지방 사립대 중 특성화로 생존하는 사례가 다수 나오거나, 충남대-공주대 통합처럼 거점국립대 간 통합이 비거점 지방대 전체로 확산되는 모델로 이어지면 “선택과 집중=양극화” 판단은 수정이 필요하다.
세 장면은 하나의 서사로 수렴한다. 연금은 저소득층부터 우선 지급하고, 집값은 강남 대신 강북이 오르며, 대학은 거점국립대만 살린다. 위기 앞에서 “선택과 집중”은 매번 양극화의 다른 이름으로 도착한다.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 700만 명 중 누구에게 먼저 40만 원을 줄 것인지, 서울 어느 구의 무주택자가 진짜 수혜를 받을 것인지, 어떤 지방 도시에 대학이 남을 것인지 — 이 모든 질문의 답은 결국 “어디에 선을 그을 것인가”의 문제다. 국가가 선을 그을 때, 선 밖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각 장면에서 이미 목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