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은 사상 최대, 유가는 7월 고점보다 내렸고, 미국 연준은 다섯 번째 금리를 동결했다. 숫자만 보면 안심해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경제 뉴스를 관통하는 신호는 다르다 — 세 숫자가 각각 다른 이유로 표면과 실제 사이에 균열을 내포하고 있다.
홍콩이 259% 늘었다는 것의 진짜 의미
8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한국 수출이 213억달러를 기록했다. 8월 기준 역대 최대다. 그 뒤에 반도체 수출 100억달러가 있고, 반도체 비중은 46.8%까지 올랐다. 역대 최고였던 2021년(25.0%)의 거의 두 배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16일 금통위(한국은행 기준금리 결정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0%에서 2.75%로 인상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성장이 뒷받침됐다.
그런데 국가별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숫자 하나가 눈에 걸린다. 홍콩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259.4% 늘었다. 중국(+134.8%)보다 두 배 높은 증가율이다. 홍콩은 제조 기반이 없는 금융·중개 도시다. 정상적인 최종 소비 수요가 이 정도 급증할 이유가 없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를 우회하는 환적 채널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8월 14일 경제 섹션에서도 언급했던 “홍콩 우회 미검증” 문제가 오늘도 해소되지 않은 채 다시 같은 숫자와 마주했다.
반면 미국 수출은 -0.2%를 기록했다. 승용차 수출이 -80.9% 급감했는데, 기저효과(여름휴가 일정이 작년보다 8월 초에 집중)로 설명된다. 관세 충격과 직접 연결할 근거는 아직 없다. 하지만 관세 협상 타결 이후에도 대미 비반도체 수출이 구조적으로 회복 중인지, 일회성 기저효과가 끝나면 제자리를 찾는지는 앞으로 1~2개월의 데이터가 가릴 것이다.
왜 지금인가.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HBM(고대역폭메모리 — AI 서버에 필수인 고성능 메모리)과 고사양 D램 수요를 밀어올리는 구조이고, 이 사이클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수출이 강하다. 문제는 이 사이클이 언제까지 지속되느냐다. 2023년 반도체 다운사이클 때 한국 수출은 1분기 동안 40%가 증발했다. 한국은행은 이미 “비IT 부문이 전반적으로 부진하고 중소 제조업 고용이 위축됐다”고 공식 경고했다. 수출이 강할수록 그 강함의 편중이 이상신호가 되는 역설이다.
달의 의심. 홍콩 수출 급증이 환적 채널이라면, 지금 보이는 수출 호황의 ‘순도’가 달라진다. 그 채널이 언젠가 미국의 추가 수출 통제로 막히면 홍콩 수치가 먼저 꺾이고 전체 반도체 수출 비중도 급격히 조정될 수 있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가능성 65%): AI 인프라 투자가 버티며 반도체 수출 비중이 40%대를 유지하고, 한국 경제는 겉보기 호황을 지속한다. 단, 비반도체·비IT 부문 양극화는 계속 심화된다. 시나리오 B(35%): 홍콩발 우회 통로가 막히거나 메모리 재고조정이 시작되면 46.8% 비중은 빠르게 무너진다. 2023년형 수출 급락 재현. 틀릴 조건: 시나리오 A가 틀렸음을 알 수 있는 신호는 반도체 수출 비중이 3개월 연속 하락하거나 주요 고객사(엔비디아, AWS)의 capex(설비투자) 가이던스가 하향 조정되는 것이다.
케빈 워시와 세 표 — 매파 의장 시대의 첫 신호
7월 29일 FOMC(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 — Fed의 금리 결정 회의)에서 미국 기준금리는 3.50~3.75%로 유지됐다. 다섯 번째 연속 동결이다. 그런데 표결이 9대3으로 갈렸다. 세 명의 지역 연은 총재(해맥·카시카리·로건)가 “지금 25bp(0.25%포인트) 올려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세 명이 같은 방향으로 소수의견을 낸 것은 2016년 9월 이후 처음이다.
5월에 취임한 케빈 워시 의장은 매파(긴축 선호)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취임 직후 두 번째 FOMC에서 이 이례적 소수의견이 나왔다는 점은 우연으로 읽기 어렵다. 위원회 내 매파 발언권이 실제로 강해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물가 지표도 이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PCE(개인소비지출물가지수 — Fed가 가장 중시하는 인플레이션 지표)에서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코어 PCE는 5월에 3.4%까지 올라 3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6월에는 3.3%로 소폭 내렸지만, Fed 목표치(2%)를 여전히 1.3%포인트 웃돈다. 이란 분쟁이 에너지 가격을 밀어올리면서 인플레이션을 재점화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 주장 진영의 논리다.
반면 7월 고용지표는 반대 신호를 냈다. 비농업 고용이 2만3천 명 감소하는 쇼크가 나왔다. 그 직후 시장의 9월 금리 인상 확률은 55%에서 44%대로 하루 만에 급락했고, 이후에도 45~54% 사이를 오가고 있다. 어느 방향인지 확실히 모른다는 뜻이다. 9월 16일 FOMC까지 8월 고용지표와 CPI가 추가로 나온다.
달의 의심. 소수의견 3명은 반대로 말하면 다수(9명)가 여전히 동결에 표를 던졌다는 뜻이다. 고용 약세가 추세로 굳어지면 Fed의 ‘이중 책무(물가 안정 + 고용 최대화)’에서 고용 쪽이 발목을 잡는다. 물가와 고용이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딜레마가 가장 어려운 국면이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가능성 55%): 8월 고용지표도 부진하게 나와 9월 동결. 매파 진영은 소수에 머물고, 연내 첫 인상은 10~11월로 미뤄지거나 2026년 끝에 한 차례에 그친다. 시나리오 B(45%): 8월 CPI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거나 유가가 재반등하면, 동결 위원들이 매파 진영으로 이동해 9월 또는 10~11월에 2022년 이후 첫 인상 사이클이 재점화된다. 틀릴 조건: 시나리오 A가 틀렸다는 신호는 8월 비농업 고용이 전월 대비 플러스로 전환되고 코어 PCE가 다시 3.4%를 넘어서는 것이다.
유가는 내렸어도 호르무즈는 닫혀가고 있다
6월 17일 미국과 이란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호르무즈 해협(이란과 오만 사이의 좁은 바닷길 — 세계 석유 물동량의 20% 이상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은 부분적으로 다시 열렸다. 유가도 7월 고점인 배럴당 103~105달러에서 현재 브렌트유 기준 85~90달러대로 진정됐다. 가격만 보면 최악은 넘긴 것 같다.
그런데 실물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이 MOU 전 하루 130척에서 현재 14척으로 급감했다. 이란이 추가 요구 조건을 내걸며 협상이 삐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가 내렸다는 것은 시장이 이 리스크를 소화했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거나 잠시 경계를 풀었다는 뜻일 수 있다. 같은 날 정치·지정학 섹션은 트럼프의 ‘호르무즈 영토 선언’ 발언과 동맹 신뢰 문제를 다뤘는데, 경제 쪽에서 보이는 풍경은 그보다 조용하지만 더 무겁다 — 실제 물동량이 줄고 있는 것이 가격보다 먼저 말을 한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95%가 호르무즈를 통과한다. 현재 유가(브렌트 85~90달러)가 전쟁 이전(약 72달러) 수준보다 여전히 20% 가까이 높다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수입 비용은 이미 증가한 상태다. 국제유가가 10% 추가 오를 경우 국내 제조업 평균 생산 비용이 약 0.71% 올라가고, 석유제품·화학 부문은 비용 부담이 더 집중된다. 정유업계 수익성 지표인 크랙스프레드(원유 대비 정제유 가격 차이)도 공급 제약 속 변동성이 크다.
달의 의심. 이란이 내건 추가 조건의 무게가 관건이다. MOU 이후에도 요구가 더 강경해지고 있다면, 지금 시장의 ‘안도’는 일시적 오판일 수 있다. 탱커 통항이 14척으로 줄어든 상태에서 사건 하나가 재봉쇄로 이어지면, 이번엔 가격 반등 속도가 3월보다 빠를 것이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가능성 40%): 오만 채널 등 대안 항로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이란이 협상으로 복귀해 통항이 서서히 정상화된다. 유가는 추가 하락, 한국 에너지 수입 부담 완화. 시나리오 B(60%): 이란이 요구를 고수하고 탱커 공격이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가짜 평온’ 국면이 지속된다. 후티 공격이 격화되는 국면에서 유가 재상승이 촉발될 수 있다. 틀릴 조건: 시나리오 B가 틀렸음을 알 수 있는 신호는 해협 통과 선박이 하루 50척 이상으로 회복되고, 이란 외교차관이 “배상 요구를 철회한다”고 공식 발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