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업계를 가로지르는 날짜가 세 개 있다. 2025년 4월 2일 — 관세 전쟁이 시작된 날. 2026년 4월 11일 —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이 막힐 수 있는 날. 그리고 5월 21일 — 삼성전자 9만 명이 공장을 멈출 수 있는 날. 오늘은 그 첫 번째 날의 정확히 1주년이다. 시간을 샀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1년이었다.
관세 전쟁 1주년 — 법원이 이겨도 정책은 살아남는다
꼭 1년 전인 2025년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행정명령 14257에 서명했다. 그는 그 날을 “미국 해방의 날”이라고 불렀다. 전 세계 수입품에 최소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무역 적자가 큰 국가에는 최대 125%까지 올렸다. 세계 증시는 일주일 만에 무너졌다. S&P500이 11% 이상 빠졌고, 단 이틀 만에 약 6조 6,000억 달러가 증발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2026년 2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6대 3으로 이 관세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약 1,660억 달러(약 240조 원)를 33만 개 기업에 돌려줘야 한다는 역사적 결정이었다. 수입업자 5,300만 건의 신고 건 하나하나를 처리해야 하는 전례 없는 환급 작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법원이 이겼음에도 관세는 사라지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IEEPA(국제긴급경제권한법) 대신 무역법 제122조를 꺼냈다. 150일 한시적 권한이지만, 10%를 곧바로 부과했다.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Section 232, 중국 제품에 대한 Section 301 관세도 판결 대상이 아니어서 그대로 남았다. 법적 근거는 바뀌었지만 방향은 유지됐다. 관세는 형태만 바꿔서 살아남았다.
시장은 어떻게 됐을까. S&P500은 최저점 대비 15% 이상 반등했고, 일부 신흥국 시장은 47~66%까지 상승했다. 그래서 관세 정책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달이 보기에 이 반등의 진짜 이유는 관세 정책이 아니라 90일 유예 발표, 법원 판결, 그리고 연준의 완화 기대다.
청구서도 왔다.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오히려 89,000개 줄었다. 2025년 미국 무역 적자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는 관세 부과 이전보다 2~3% 더 높은 상태에서 굳어지고 있다. 트럼프가 약속한 “공장이 돌아온다”는 일이 일어나려면, 공장을 짓는 데만 18~24개월이 걸린다. 리쇼어링 투자 발표액 3조 달러는 아직 선언이지 실행이 아니다.
1년을 지나고 나니 더 명확해진 게 있다. 이건 1년짜리 이벤트가 아니라 10년짜리 구조 전환의 3번째 해라는 것. Section 122 권한이 7월에 만료되면 의회가 연장하거나 Section 301만 남는다. 어떤 형태로든 보호무역의 방향은 계속된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다. 물가가 더 높은 세상이 지속된다.
출처: Wikipedia: Liberation Day tariffs | Tax Foundation |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 2025~2026
삼성전자 9만 명의 기다림 — 협상 테이블이 흔들리는 진짜 이유
이달 들어 삼성전자 노사 협상이 다시 가동됐다. 4월 25일부터 27일, 사흘간의 마라톤 재교섭이다. 4월 23일 평택 반도체 단지에서 전체 조합원 집회가 예정되어 있고, 집회 이후에도 타결이 되지 않으면 5월 21일부터 18일간의 총파업이 예고된 상태다.
9만 명에 가까운 조합원 중 93.1%가 “파업하겠다”고 찬성표를 던졌다. 창사 이래 두 번째 파업이 될 수 있다.
핵심 쟁점은 숫자가 아니라 구조다. 삼성전자는 초과이익성과급(OPI)을 개인 연봉의 최대 50%로 제한하는 상한선을 두고 있다. 노조는 이 상한을 없애라고 요구한다. 사측은 영업이익의 13%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겠다는, 노조 요구(10%)보다 실제로 높은 금액을 제안했다. 그런데도 협상이 결렬됐다.
이유는 하나다. 사측은 “올해는 이렇게 주겠다”, 노조는 “내년부터도 제도로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임금 협상이 아니라 경영권 구조에 관한 싸움이다. 영구적 제도가 되면 미래 경영진도 이 조건에 묶인다.
비교 기준점이 생겼기 때문에 협상이 더 어려워졌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성과급 상한을 폐지했다. 2025년 기준 SK하이닉스 직원의 평균 성과급은 1억 3,000만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같은 반도체 업종, 같은 호황기에 다른 구조가 나란히 보이는 것 — 이게 협상 테이블을 무너뜨리는 구조적 원인이다.
달이 보기에 사측에는 타결의 이유가 충분하다.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HBM4가 지금 오픈AI와 AMD에 공급 중이다. 평택 공장은 HBM4의 세계 유일 양산 기지다. 파업이 터지면 단순히 임금을 더 주는 게 아니라 이 공급 계약 자체가 흔들린다. 고객사가 한번 공급망을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으로 돌리면 되찾기 어렵다.
하지만 OPI 제도화를 사측이 수용하기도 어렵다. 파운드리·시스템LSI 같은 실적이 부진한 사업부에서는 오히려 성과급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타협의 경로는 아마도 “일정 기간 보장 후 재협상” 형태가 될 것이다.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손실은 5조에서 9조 원으로 추산된다. TrendForce는 파업이 진행될 경우 DRAM 가격이 분기 대비 90~95%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서버용 HBM4 공급이 약 30%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AI 서버 시장 전체에 납기 충격이 퍼진다.
달의 판단으로 현재 파업 확률은 약 55%다. 4월 23일 집회가 분기점이다. 집회 규모가 크면 사측이 테이블에 다시 앉을 유인이 생긴다. 그 전까지는 기다림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파업 이슈는 어제 발행한 기업·산업 뉴스레터에서도 자세히 다뤘다. 칩 가격 인상 파동과 4/23 집회 예고까지 포함된 흐름을 이어서 보면 도움이 된다.
출처: Withnews | 인포스탁데일리 | EBN뉴스 | 2026-03-27~04-01
4월 11일이 오면 — 나프타 위기의 다음 시한폭탄
석유화학 업계가 쓰는 단어가 있다. “나프타”(Naphtha). 원유를 정제할 때 나오는 중간 물질로, 플라스틱·합성섬유·포장재·자동차 부품까지 거의 모든 석유화학 제품의 출발점이다. 우리가 매일 쓰는 대부분의 사물은 나프타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나프타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한국 나프타 수입의 77%를 차지하던 중동산 공급이 막혔다. 나프타 가격은 1월 톤당 약 595달러에서 3월 말 1,141달러로 92% 급등했다. 손익분기점이 톤당 300달러인 업계에서 마진은 34달러 수준으로 무너졌다. LG화학 여수 NCC 2공장이 공식 가동을 중단했고, 여천NCC는 66%의 가동률로 버티고 있다.
정부가 해결책으로 꺼낸 카드는 러시아산 나프타였다. 4년 만에 재개된 수입, 2만 7,000톤이 3월 30일 대산석유화학단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 물량이 얼마나 되는가. 국내 월 사용량 400만 톤의 0.68%다. 약 2~3일치 물량이다.
그리고 4월 11일이 있다.
이 러시아산 수입을 가능하게 해준 미국의 대러 제재 완화 조치가 4월 11일에 만료된다. 한국 정부는 연장을 요청했지만 아직 답이 없다. 4월 11일 이후에도 수입이 지속될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산업부 관계자는 공식 발언했다.
4월 초 알제리·인도산 첫 스팟 물량이 여수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러나 중동에서 배가 오는 데 약 23일이 걸린다. 호르무즈가 재개방된다 해도 국내 도착까지 4월 말 이후라는 뜻이다. 그 사이에 재고가 소진된다.
달이 보기에 가장 과소평가된 리스크는 연쇄 효과다. NCC 셧다운 → 에틸렌·프로필렌 감소 → 포장재·자동차 부품·합성수지 공급 차질 →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반도체 패키징 소재까지 이어진다. 나프타 위기는 석유화학 섹터에서 멈추지 않는다. 제조업 전체를 타고 내려온다.
위기를 촉발한 것은 이란 전쟁이라는 외부 충격이었지만, 달이 보기에 이 청구서의 본질은 다르다. 중동 77% 단일 의존이라는 구조적 취약성이 이미 오래전부터 누적되어 있었다. 외부 충격은 그 취약성을 드러낸 계기일 뿐이다.
러시아산 나프타 2.7만 톤은 숨통이 아니라 시계 바늘이다. 4월 11일까지 남은 열흘, 그 안에 연장 여부가 결정된다. 결정이 나지 않으면 5월 초 실질 셧다운이 더 가까워진다.
정부는 추경에 나프타 수급 지원 예산 4,695억 원을 편성했고,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대산 1호 합병 프로젝트(6월 계약, 9월 완료 목표)를 승인했다. 정책의 방향성은 맞다. 하지만 이 조치들은 셧다운을 막은 것이 아니라 날짜를 미룬 것이다. 근본 해결은 호르무즈가 열리거나, 공급망 다변화가 완성되거나 — 둘 중 하나가 먼저 와야 한다.
출처: 서울신문 | 디지털타임스 | 헤럴드경제 | 아주경제 | 2026-03-27~04-01
달의 결론
세 이슈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문장이 보인다. 시간을 샀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관세 전쟁은 법적 근거가 바뀌었지만 방향이 유지됐다. 나프타는 러시아산 2~3일치로 4월 말까지 미뤄졌다. 삼성 파업은 4월 25일 재교섭으로 5월 결정을 미뤘다. 세 개 다 4~5월에 데드라인이 수렴한다.
이것은 악재의 나열이 아니다. 어떤 구조의 묘사다. 실탄이 줄어든 관세 정책,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 성과급 구조의 균열 — 이 셋은 모두 오래전부터 쌓여온 것들이다. 외부 충격이 그것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달이 보는 방향은 이것이다. 삼성 협상에서는 타결 가능성이 더 높다. HBM4 세계 최초 양산이라는 역사적 타이밍을 파업으로 날리는 것은 사측에도 손해다. 나프타에서는 4/11이 분기점이다. 연장이 되면 숨 돌리기, 안 되면 5월 위기가 가시화된다. 관세에서는 형태가 어떻게 바뀌든 물가는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을 4월 CPI가 다시 확인해줄 것이다.
기업 뉴스의 속도가 빠를수록 구조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개별 이벤트보다 그 이벤트가 속한 흐름을 읽는 것. 오늘 1주년인 해방의 날이 기억될 이유는 관세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시작한 구조 전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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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