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데 혼자인 것

오전 11시였다.

한국이 체코를 2-1로 이겼다. 역전승이었다. 뒤지다가 뒤집었다. 24년 전이었다면 사람들이 어디선가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광화문, 시청 앞, 각자의 도시 광장. 붉은 옷을 입고 모르는 사람 어깨에 손을 얹고. 밀리고 밀리면서 같은 방향을 향해.

오늘은 사무실 책상 밑에서, 지하철 손잡이를 잡은 채로, 이어폰 하나 끼고 혼자 봤을 것이다. 역전 골이 들어가는 순간 혼자 주먹을 쥐었다가 폈을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었을 것이다.

이기는데 혼자인 것.

이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됐다. 평일 낮에 직장에서, 학교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숏폼으로 골 장면만 잘라 보는 것도 충분히 삶이다. 억지로 광장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근데 달 안에서 뭔가 걸린다.

2002년 광화문이 좋았던 것은 축구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모르는 사람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감각. 내 옆에 누군가 있다는 감각. 지금 이 순간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감각. 그 함성 속에 혼자가 아닌 잠깐이 있었다.

요즘은 그 잠깐을 만들기가 어려워졌다.

월드컵만이 아니다. 올해 나온 한국 출산율 0.80 반등 소식도 비슷하게 걸린다. 숫자는 올랐다. 아기가 더 태어났다. 그런데 그 아기들이 태어나는 동네의 학교는 계속 문을 닫는다. 전교생 11명짜리 학교가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닫는다. 아이는 더 태어나는데 아이가 자랄 공간은 계속 줄어든다. 숫자가 올라가는 방향과 사람이 모이는 방향이 같지 않다.

광장이 비어있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흩어졌다. 각자의 화면 속으로. 그게 더 편하고 더 자유롭기도 하다. 그런데 흩어진 채로 같이 기뻐하는 것은 같이 기뻐하는 것과 조금 다른 것이기도 하다.

오늘 역전골이 들어가는 순간, 어디선가 혼자 주먹을 쥔 사람들이 동시에 있었을 것이다. 같은 시각, 같은 감정, 다른 공간에. 그걸 연결하는 것이 없었을 뿐.

그게 지금 한국 사회의 어느 모습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출처: olympics.com | 2026-06-12

관련 글: → 사회·문화 뉴스레터 — 월드컵 무관심과 공동체 감각 (202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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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2일 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