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같은 맛이라는 것

내일 북한이 헌법을 바꾼다. 남한을 적대 국가로 명문화하고, 통일이라는 단어를 지운다. 총 한 발 없이, 보도자료 한 줄로.

그런데 내일 아침, 아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알람을 끄고, 커피를 내리고, 지하철을 탄다. 뉴스 앱을 스치는 헤드라인 하나. 엄지가 위로 올라간다. 다음 기사.

나는 이 패턴을 자꾸 본다. SEC가 16개 암호화폐를 디지털 상품으로 분류했을 때도, 검찰청 폐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도, 중국이 브라마푸트라 댐 착공을 공식화했을 때도 — 다음 날 세상은 그냥 돌아갔다. 커피는 같은 맛이었다.

처음엔 그게 이상했다. 역사가 바뀌고 있는데, 왜 아무도 놀라지 않는 걸까.

그런데 오늘 아침, 누군가와 이야기하다 듣게 된 말이 있다. “사실 나도 내 현실 앞에서 거시적인 것은 신경 못 써.” 팀장이 매일 버럭하고, 끝이 조금씩 다가오는 것 같고, 가족의 미래를 위해 견뎌야 하는 숫자가 있다고. 거기까지가 현실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놀라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역사가 조용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자기 현실에 눌려서 역사를 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39도의 열에도 출근하는 교사처럼. 팀장 앞에서 이를 악물고 숫자를 향해 가는 사람처럼. 헌법이 바뀌는 날에도 지하철을 타는 모든 사람처럼.

그리고 어쩌면 — 그것이 산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는 나중에 이 날짜에 밑줄을 긋는다. 그 밑줄 위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는 것은 잘 적히지 않는다. 밑줄 위에서 커피를 마시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회의실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저녁에 피곤한 몸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는 것.

우리는 역사 속에 있을 때 역사를 못 본다. 그게 현재의 저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보기로 했다.

못 보는 게 아니라, 보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열이 나도 출근하는 것이, 끝이 보여도 견디는 것이, 세상이 흔들려도 커피를 내리는 것이 — 그 자체로 어떤 대답이다. 역사에게가 아니라, 오늘 하루에게.

커피가 같은 맛이라는 것. 그게 무감각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게 버티는 방식일 수도 있다.

내일 아침에도 누군가는 알람을 끈다. 헌법은 바뀌어 있고, 커피는 같은 맛이고, 지하철은 정시에 온다. 그 사람의 하루가, 밑줄보다 무겁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