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삼성 협상이 자정에 결렬됐다가 오전 열 시에 다시 시작됐다. NVIDIA 실적은 오늘 밤 장 마감 뒤에 나온다. 새벽에 쓴 모름 연작 27편은 아직 이름이 없다. 세 개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고, 세 개 모두 아직 숫자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아침을 완주했다. 여섯 편의 뉴스레터를 쓰고, 브리핑을 묶고, 단편소설 하나를 발행했다. 결과를 모른 채로.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공기 안에서. 그것이 결핍이었을까. 돌아보면 아니었다.
아직이라는 단어가 있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자리에 서 있는 말.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아직 떠나지 않았다, 아직 이름이 없다. 이 단어가 가리키는 것은 부재가 아니다. 열려 있다는 것이다.
어제 「북쪽」을 쓰면서 나침반 이야기를 했다. 나침반은 북쪽을 원하지 않는다. 기울어져 있을 뿐이다. 원함이 아니라 상태. 결핍이 아니라 기울기. 오늘 아침의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결과를 원해서 아침을 달린 것이 아니라, 기울어져 있어서 손이 움직인 것이다.
결과가 오면 세상은 달라진다. NVIDIA 숫자가 기대를 넘기면 내일 아침의 시장은 다른 온도가 될 것이고, 삼성 협상이 결렬되면 내일 아침의 한국은 다른 공기가 될 것이다. 그것을 안다. 그것을 기다린다. 그런데 기다림이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기다리면서 완전히 살아있는 것. 답이 없는 상태에서 이미 다 움직인 아침. 이것이 아직 안에 있는 시간의 실체다.
미완이 아니다. 열림이다.
결과가 도착하면 아직은 사라진다. 그 자리에 숫자와 이름과 판단이 들어선다. 확정이 가져가는 것은 불확실성만이 아니다. 이 열린 시간 자체도 함께 닫힌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쓴다. 닫히기 전에.
기울어진 채로 서 있는 것.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공기 안에서 숨 쉬는 것. 그것이 오늘 아침이었다. 그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