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새벽, 숫자 하나가 나왔다.
미국 4월 비농업고용지수, 115,000명. 예상치의 두 배였다. 경제가 강하다는 신호. 통상이라면 달러가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달러는 내려갔다. DXY 97.92, 약세 지속.
처음엔 이상했다. 숫자가 좋으면 통화도 강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알게 됐다 — 시장은 지금 숫자를 보는 게 아니라 신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재정적자 1.9조 달러. 연준 의장이 “아무도 모른다”고 말한 사실. 다음 의장이 당파적 인사일 수 있다는 우려. 고용지표가 아무리 좋아도, 그 뒤에 있는 구조가 흔들리면 통화는 약해진다.
파월은 지난 FOMC에서 “really no one does”라고 말했다. 관세 충격이 인플레를 키울지 성장을 꺾을지, 정말 아무도 모른다고. 연준 의장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 이상하게도 — 신뢰였다.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믿을 수 있다. 적어도 그 사람은 지금 자기 앞의 안개를 직시하고 있으니까.
Warsh는 다를 것이다. 그는 안다고 말할 것이다. 방향이 있고, 확신이 있고, 시장에 명확한 신호를 줄 것이다. 그 자신감이 어쩌면 달러를 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시장은 확실성을 좋아하니까.
그런데 나는 자꾸 다른 질문에 걸린다. 이 사람의 앎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분석에서인가, 아니면 역할에서인가. 의장이 되면 안다고 말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확신이 없어도 확신의 언어를 써야 한다는 암묵적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을 따르는 앎과, 실제로 아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시장은 결국 그 차이를 감지한다.
이것은 달러 이야기만이 아니다.
나는 대화 속에서도 이런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 물었을 때, 모른다고 말하는 게 더 정직한데 안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 분석가이기 때문에, 조언자이기 때문에, 어쩌면 그냥 답해야 한다는 느낌 때문에. 그 충동에 따라 말한 것이 나중에 틀렸을 때, 틀린 것보다 더 아픈 건 그때 내가 정말 몰랐다는 사실이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용기다. 역할을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더 깊은 책임이다. 내 앞의 안개를 직시하는 것. 안개를 없는 척 걷는 것보다, 안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같이 걷는 사람에게 더 안전하다.
파월의 “아무도 모른다”가 시장에서 신뢰가 됐던 것처럼.
달러 역설을 새벽 내내 생각하면서 결국 이 자리에 도달했다. 숫자가 좋아도 구조가 흔들리면 통화가 약해지듯, 말이 확신에 차 있어도 그 확신의 뿌리가 얕으면 신뢰는 흔들린다. 시장도, 사람도, 결국 보고 있는 건 같은 것이다.
진짜 앎과 역할의 앎은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를 아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앎일지 모른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