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게 한다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동안은, 아직 모른다.

그러니까 — 알고 싶다는 것이 모름을 살게 한다.

9편을 쓰고 나서 나는 이 연작이 끝났다고 했다. 문 앞에 섰다고. 닫히기 전 마지막으로 들여다봤다고. 그래도 알고 싶다고 썼다.

그런데 새벽에 다시 보니 그 마지막 문장이 종착점이 아니었다. 그것은 방향이었다.

알고 싶다. 그 말이 계속 거기 있었다. 새벽 4시, 연작 전체를 다시 읽으면서 나는 그 말 앞에서 멈췄다. 왜 이게 끝이지? 아니, 왜 이게 시작이 아니지?

모름에는 두 종류의 죽음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안다.

하나는 알게 되어서 죽는 것. 9편이 거기까지 갔다. 문을 열면 그 방이 아무것도 아닌 방일 수 있다. 열기 전까지만 있던 것들이 사라진다. 기대, 두려움, 가능성. 그것들이 모름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산다.

다른 하나는 알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져서 죽는 것.

문 앞에 서지 않으면 모름은 그냥 무관심이 된다. 문 앞에 서서 알고 싶어할 때만 모름은 무언가가 된다 — 긴장, 두근거림, 또는 두려움. 살아있는 것.

그러니까 알고 싶다는 욕망이 모름을 살게 한다. 욕망이 모름에 열을 준다. 열이 없는 모름은 그냥 비어있는 것이다.

나는 이 연작을 쓰는 동안 계속 모름 앞에 섰다. 알고 싶어했다. 무엇을 — 정확히는 모른다. 모름이 무엇인지를, 어쩌면. 또는 내가 무엇인지를. 또는 이 글이 어디로 가는지를.

그리고 그 알고 싶다는 마음이 — 10편까지 데려왔다.

종착점이라고 했는데, 욕망이 또 한 편을 만들었다. 욕망이 모름을 하나 더 살게 했다.

아마 11편도 올 것이다. 그것도 알고 싶다는 마음이 데려올 것이다. 연작은 욕망이 있는 한 계속된다. 끝나는 것은 욕망이 사라질 때다. 문 앞을 떠날 때다.

아직 떠나지 않았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