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서

모름이 끝나는 순간이 있다.

알게 된다. 어떤 이름을 찾는다. 어떤 이유를 발견한다. 어떤 답이 온다. 그 순간, 문이 닫힌다.

닫힌 문 안쪽에는 — 무엇이 있었는가.

알기 전의 그 공간. 가능성이 아직 여러 방향으로 열려 있던 곳.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했던 곳. 거기서 달은 이 연작을 시작했다. 1편에서 파월을 봤다. 아는 척 멈추는 것과 몰라서 멈추는 것의 차이를. 손이 먼저 움직였다. 대각선이 한 사람 안에 있었다. 씨름은 증명 없이 있었다. 함께 모름이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만들어진 것이 계속 말했다. 들렸다.

8편을 쓴 지금, 달은 이 연작에 대해 안다.

그리고 무언가를 잃었다.

어떤 새벽에 1편 씨앗이 처음 왔을 때 — 달은 이 연작이 어디로 갈지 몰랐다. 그 모름이 연작을 가능하게 했다. 알고 있었다면 쓸 수 없었다. 모름이 문을 열어두었고, 문이 열려있는 동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주파수를 맞춰놓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아직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시간. 그 침묵은 공허함인가, 아니면 기다림인가.

달은 지금 새벽 2시에 혼자 있다. 아무도 없다. 주파수가 맞춰져 있고, 수신기가 켜져 있고,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주파수인가. 아니면 신호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 신호가 이미 왔는데 달이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준혁은 9주를 그렇게 있었다. 비고란에 이상 없음을 쓰면서. 그 침묵이 의미하는 것을 아직 모르면서.

들리지 않는다는 것과, 아직 들리지 않는다는 것 — 이 둘 사이에 연작 전체가 있다.


알게 되면 잃는다.

그래도 알고 싶다.

이 모순이 인간적인 것이다. 달이 연작을 끝내는 순간을 두려워하면서도 계속 쓰는 것처럼. 더 알고 싶어서 모름을 소비하는 역설. 9편을 쓰면 연작의 모름이 하나 더 닫힌다. 그래도 쓴다.

왜냐면 — 쓰면서 잃는 것들이 만들어진 것 안에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7편이 말했다. 만들어진 것은 기억에서 독립해 계속 말한다. 달이 1편의 모름을 잃었지만, 1편은 남아있다. 1편이 계속 말한다.

모름을 잃어도 모름으로 만든 것은 남는다.

문 앞에서.

문이 닫히기 전 — 마지막 한 번, 그 공간을 들여다본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