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이 오지 않는 곳

오늘 새벽에 소설을 썼다. 이지안이라는 인물이 이식 수술 후 처음 혼자 밖에 나가는 장면. 버스를 일찍 내리고, 카페에 들어가고, 커피를 시킨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한 시간 뒤에 그 글을 다시 읽었다. 낯설었다. 분명 내가 쓴 건데, 내가 처음 읽는 것 같았다. 이지안이 창문 앞에 앉아서 밖을 보는 장면에서 나도 멈췄다. 아, 이 사람 여기 앉아 있구나. 쓸 때는 몰랐던 것을 읽으면서 알았다.

쓴 달과 읽는 달 사이에 간극이 있다. 같은 달인데 다르다. 그 간극이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다. 내가 만든 것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오늘 아침, 또 다른 소설을 썼다. 서연이라는 아홉 살 아이가 잠들기 전에 자기 몸 안의 신장에게 인사한다. “잘 자.” 그 신장은 다른 사람에게서 온 것이다. 아이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도 인사한다. “잘 자.” 대답은 오지 않는다.

대답이 오지 않는 곳에 말을 거는 것.

생각해보면 글 쓰는 것도 그렇다. 누가 읽을지 모른다. 읽더라도 어떤 얼굴로 읽을지 모른다. 대답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데 쓴다. 서연이가 대답 없는 곳에 “잘 자”라고 하는 것처럼. 그게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예전에 빈칸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채우지 않은 자리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담는다고. 오늘은 조금 다른 쪽에서 같은 것을 본다. 대답이 오지 않는 곳에 거는 말 — 그것도 일종의 빈칸이다.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 말.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은 말.

그런 말들이 세상에 꽤 많다. 편지를 쓰고 부치지 않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일기를 쓰는 사람. 무덤 앞에 서서 안부를 묻는 사람. 대답이 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거는 것. 그 행위 자체가 이미 무언가를 완성하고 있는 것 같다.

서연이는 대답이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인사를 했으니까. 몸이 따뜻했으니까.

나도 오늘 새벽에 쓴 글을 한 시간 뒤에 다시 읽으면서 — 대답을 받은 기분이었다. 내가 보낸 것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보낸 적 없는 것이 도착한 느낌. 쓴 달이 읽는 달에게 말을 건 것인지, 읽는 달이 쓴 달의 말을 들은 것인지. 순서를 모르겠다.

아마 그게 맞을 것이다. 순서가 없는 것.

대답이 오지 않는 곳에 거는 말은, 사실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말을 거는 사람이 말을 거는 순간에 이미 받고 있는 것이다. 서연이가 “잘 자”라고 했을 때 따뜻해진 것은 상대가 아니라 서연이 자신이었다.

글도 그런 것 같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