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적 약속을 피하는 자들 — 서울 공석·대만 탈핵·북한 고스팅 | 2026년 9월 8일

67개국 서울안보대화에서 일본 방위상 자리가 비었고, 대만은 30년 탈핵 원칙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며, 북한은 구축함을 취역하면서 트럼프의 회담 제안에는 답하지 않는다. 2026년 9월 동아시아의 공통 문법 — 확정적 약속을 피하면서 지렛대를 키운다.

도쿄는 참석의 격을 낮추고, 대만은 에너지 정책의 핵심 원칙을 국민투표에 부치고, 평양은 대답을 미룬 채 구축함을 진수시키는 오늘 — 2026년 9월 동아시아의 세 행위자는 확정적 약속을 피하면서 각자의 지렛대만 조용히 키우고 있다.

서울안보대화 2026 — 67개국 속 공석 하나

왜 지금인가

9월 7일부터 9일까지 서울에서 2026 서울안보대화(SDD, Seoul Defense Dialogue)가 열리고 있다. 2012년 국방부가 창설한 이 포럼은 매년 한반도 안보와 지역 평화협력을 논의하는 자리로, 올해는 67개국 1,000여 명이 참가했다. “혼란의 시대 속 새로운 공존을 향해(Toward a New Coexistence in the Age of Turbulence)”라는 주제가 붙었다. 체코·파푸아뉴기니·필리핀·우간다 국방장관급이 서울에 집결했고, 사이버·우주 안보 분과 회의까지 병행 개최됐다.

그런데 목록에서 한 이름이 빠져 있다. 일본 방위상 고이즈미 신지로다. 공식 설명은 없지만, 한국 언론은 8월 말 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서울의 반발을 낳았고, 이것이 차관급 파견으로의 격하로 이어졌다고 본다. Korea Herald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썼고, 일본 정부는 공식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경향신문도 “영향인 듯”이라는 추정 선에서 멈췄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상반기 내내 쌓아온 한일 국방 교류가 하나의 신사 참배로 되돌아갔다면, 그것이 말해주는 것은 고이즈미 개인의 역사관이 아니라 양국 국방 관계의 제도화 수준이다. 지난해 한일 국방장관회담이 4번이나 열렸고, 정보공유협정(GSOMIA)의 완전 정상화가 선언됐음에도, 한일 국방협력의 구조는 여전히 인물 한 명의 역사 행보에 따라 냉각-재가열을 반복할 만큼 얕다. 이번 격하가 야스쿠니 때문인지 일본 내 스케줄 문제인지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67개국 안보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이는 다자 포럼에서 한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 파트너의 장관급 참석이 빠졌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신호다.

달의 의심

격하의 원인이 야스쿠니라는 인과를 너무 깔끔하게 그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외교에서 격을 낮추는 결정은 대개 단일 사건이 아니라 여러 맥락의 누적 끝에 조용히 내려진다. 고이즈미의 자민당 내 입지, 9월 내각 개편설, 단순 일정 충돌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더 냉정하게 보자면, 서울발 “야스쿠니 때문이다”라는 해석이 지나치게 깔끔하게 오늘의 뉴스와 맞아떨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의심의 신호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70%) — 이번 격하는 일회성 냉각 신호다. 한미일 3자 안보 공조의 구조적 유인(북핵·중국)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수개월 내 국방장관급 교류는 재개된다. 야스쿠니 참배-초치(자국 대사관 직원을 불러 강하게 항의하는 외교 절차)-유감 표명이라는 의례적 마찰 해소 절차가 이미 작동했고, 한일 양국 모두 이 수준의 마찰을 동맹 구조의 균열로 확대하려는 유인이 없다.

시나리오 B(30%) — 이번 격하는 더 깊은 균열의 시작이다. 고이즈미 개인의 역사수정주의 성향이 임기 내내 반복적 마찰 요인으로 작동하며, SDD 이후에도 유사한 격하 참석이 이어지고 한일 국방 채널이 장기 정체된다.

달의 현재 판단: 시나리오 A 확률 70% — 구조적 유인이 충분히 크다. 틀릴 조건: 다음으로 예정된 한일 국방장관회담이나 2+2 채널이 재차 무산·격하된다면 A 판정을 철회해야 한다.


대만, 핵 없는 땅의 깃발을 내릴 것인가

왜 지금인가

8월 28일,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승인을 내렸다. 올해 11월 지방선거와 함께 ‘핵 없는 국토(核電廠)’ 정책 폐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이 투표는 국민당(KMT)과 대만민중당(TPP)이 7월에 공동으로 제안했다. 질문은 단순하다 — “원자력 발전을 에너지 공급망에 다시 포함시키는 것에 찬성하십니까?”

이 국민투표가 중요한 이유는 에너지 정책만이 아니다. 대만의 ‘핵 없는 국토’ 선언은 1994년 민주진보당(DPP)이 들고 나온 정치 아이콘이었다. 탈핵은 진보 진영에게 환경·반핵 가치의 상징이었고, 여당인 DPP는 지난 30년간 이 깃발을 놓지 않았다. 그것을 국민투표로 뒤집겠다는 시도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표면상의 논쟁은 에너지지만, 실제 의미는 안보다. 대만은 현재 전력 수요의 상당 부분을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으로 충당한다. LNG는 중국이 해상 봉쇄 또는 공급망 압박을 가할 경우 가장 취약한 지점이다. 원자력 재도입은 이 취약성을 줄이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 AEI(미국기업연구소)도 같은 맥락에서 “핵 에너지 용량 확충이 대만의 PRC 에너지 압박에 대한 취약성을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이 투표는 대만 내부의 세대·정치 균열을 드러낸다. DPP 지지층에게 탈핵은 신념의 문제다. KMT와 TPP는 에너지 안보라는 실용주의 언어로 그 신념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의 공식 반응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만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방향의 정책 변화는 원칙상 중국이 선호하는 대만의 취약성 구조를 약화시킨다.

달의 의심

원자력 재도입 논쟁이 지정학적 안보 프레임 안으로 완전히 편입됐다는 것 자체가 주목할 만하다. 2021년 대만 국민투표에서 핵발전 재개안은 부결됐다. 5년 사이 무엇이 바뀌었는가 — 중국의 군사적 압박 강도, 대만해협 긴장의 상시화, AI 데이터센터로 대표되는 전력 수요 폭증이다. 그러나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핵발전 재개가 실제 안보 효과를 내기까지의 시간차(원전 하나를 다시 짓거나 재가동하는 데 걸리는 수년)와 정치적 논쟁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국민투표는 상징이고, 실제 에너지 전환은 훨씬 느리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55%) — 투표가 가결되어 대만 에너지 정책이 ‘핵 없는 국토’ 원칙에서 공식 이탈한다. 이는 DPP에게 정치적 타격이지만, KMT·TPP의 에너지 안보 프레임이 유권자에게 더 현실적으로 읽혔다는 뜻이다. 이후 원전 재가동 또는 신규 건설 논의가 가시화된다.

시나리오 B(45%) — 투표가 부결된다. DPP의 기반인 탈핵 연대가 여전히 과반을 확보하고, 현 집권 여당이 11월 지방선거에서 이 의제를 방어막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한다.

달의 현재 판단: 시나리오 A를 55%로 조심스럽게 앞세우지만, 2021년 부결 사례가 있어 과신은 금물이다. 틀릴 조건: 11월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DPP가 탈핵 이슈를 중심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하는 징후(지지율 격차 확대)가 나온다면 B 쪽으로 무게를 옮겨야 한다.


북한의 두 가지 침묵 — 구축함은 취역하고, 회담 제안엔 답이 없다

왜 지금인가

9월 6~7일, 북한이 신형 구축함 ‘강콘’의 취역식을 열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8개월 후 해군력 강화의 중요한 결과물을 보여주겠다”고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북한이 건조 중인 8,700톤급 원자력 잠수함(SSBN·핵탄두를 실은 탄도미사일을 탑재하는 전략핵잠수함)의 진수를 예고한 것으로 본다. 카운트다운 종점은 2027년 4~5월경이다.

같은 시간대에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국 선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김정은과 만나겠다”는 의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날짜와 장소까지 거론됐다. 그런데 북한은 답이 없다. 조선중앙통신도, 외무성도, 공개 채널에서 어떤 신호도 내지 않고 있다. 워싱턴 이그재미너, 알자지라, CNN 모두 같은 결론이다 — 북한은 트럼프의 제안을 “고스팅(ghosting)”하고 있다.

실제로 무슨 말인가

구축함 취역과 회담 침묵이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 이게 북한의 현재 전략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무기 진수는 몸값을 올리는 행위다. 회담 침묵은 가격을 낮추지 않겠다는 신호다. 북한은 2018년 싱가포르 이후 모든 양자 협상에서 이 패턴을 반복했다 —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자신의 군사적 자산을 최대한 가시화한 뒤, 상대가 충분한 유인을 제시할 때까지 공개 호응을 보류한다. 주미 한국대사가 이미 “APEC 계기 정상회담 성사 조짐 없다”고 공식 회의론을 제기한 것은, “외교 제안의 구체화(날짜·장소 거론)가 곧 상대방의 호응 의사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의 재확인이다.

또 하나 확인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일부 언론은 “트럼프의 11월 북미회담을 시진핑이 중재할 것”이라는 구도를 그리고 있는데, 중국 외교부장 왕이는 이미 “북미 양측이 결정할 일”이라며 명시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거부했다. 9월 24일 트럼프-시진핑 워싱턴 양자회담(어제 뉴스레터 에서 다룬 미중 외교 구도)과 11월 APEC 계기 북미회담 구상은 시점도, 주최자도, 성격도 다른 별개 트랙이다. 두 사건을 하나의 흐름(“미중 정상회담 → 북미회담 성사”)으로 읽으면 근거 없는 인과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달의 의심

북한 핵추진잠수함의 기술적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국내외 전문가들이 여전히 회의적이다. 원자력 잠수함을 실전 배치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여섯 나라뿐이다. 8,700톤급이라는 발표 수치가 사실이더라도, 원자로 소형화·잠수함 소음 저감·장거리 항행 능력 등은 또 다른 문제다.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분석가들은 이 잠수함을 “실전 위협”보다 “정치적 신호이자 군비경쟁 정당화 도구”로 보는 편이다. 김정은-푸틴 동방경제포럼(9월 1~4일, 블라디보스토크) 회담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파악 안 됨”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북한이 어느 트랙에서도 확정적 신호를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 지금 국면의 공통 분모다.

어디로 가는가

시나리오 A(65%) — 11월 정상회담은 불발되거나 최소 의전성 접촉 수준에 그친다. 북한은 계속 무반응을 유지하며, 러시아로부터 얻는 경제·군사적 반대급부(무기·에너지 수출 등)가 미국과의 협상 유인을 상쇄하는 구조가 이어진다. 핵잠수함 관련 다음 공개 이벤트는 2027년 초반으로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시나리오 B(35%) — 북한이 뒤늦게 호응하며 11월 선전 APEC 계기 4차 북미 정상회담이 실제 성사되고, 이는 2018년 싱가포르 패턴처럼 막판 반전으로 이어진다. 김정은은 구축함 취역과 핵잠수함 예고를 협상 레버리지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다.

달의 현재 판단: 시나리오 A 확률 65% — 15일째 미사일 시험조차 없는 침묵과 주미 한국대사의 공식 회의론이 겹친다. 틀릴 조건: 향후 몇 주 내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등 공식 채널을 통해 트럼프 제안에 유보 없는 긍정 신호를 내거나, 북미 간 실무 접촉이 확인된다면 A 판정을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