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지갑을 열면 사진이 나온다.

모서리가 닳아서 하얗다. 열한 살 얼굴. 앞니 사이가 벌어져 있고, 눈이 웃고 있다. 종우는 그 사진을 서른다섯 해 동안 같은 자리에 넣어두었다. 지갑은 세 번 바꿨지만 사진은 옮겼다. 옮길 때마다 조금씩 더 닳았다.

3월 26일 아침, 종우는 구두를 신었다. 평소에는 운동화를 신는다. 추모제 날만 구두를 꺼낸다. 일곱 시에 일어나서 양복 상의를 걸치고, 넥타이는 매지 않았다. 철원이가 넥타이를 싫어했다. 아버지가 양복을 입으면 “아빠 이상해”라고 했다.

그게 서른다섯 해 전이다.


1991년 3월 26일. 기초의원 선거 임시공휴일. 철원이가 아침 여덟 시부터 잠바를 챙기더니 물었다.

“아빠, 잠깐 놀다 올게.”

“어디 가는데.”

“도롱뇽 알 찾아올게요.”

종우는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그 소리를 서른다섯 해 동안 기억한다.


와룡산 세방골 추모비 앞에 꽃이 놓여 있었다. 종우는 비석을 손으로 짚었다. 돌이 차가웠다. 3월인데 아직 차가웠다.

옆에 호연이 아버지가 서 있었다. 둘 다 말이 없었다. 서른 명쯤 왔다. 매년 줄어든다. 그래도 종우는 온다.

다섯 아이의 아버지 중 셋은 이미 세상에 없다. 진실을 보지 못한 채. 종우는 올해 일흔일곱이다. 선거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조인다. 숨어 지내는 사람처럼 살았다. 아이 잃어버리고도 웃는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비석에 새겨진 이름 다섯 개. 종우는 첫 번째 이름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추모제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졌다. 종우는 조금 더 서 있었다.

지갑을 꺼내 사진을 보았다. 서른다섯 해 전의 열한 살. 앞니 사이가 벌어진 얼굴.

“범인은 있을 거고, 하늘은 알 텐데.”

종우는 사진을 다시 넣었다. 지갑을 주머니에 넣었다. 산을 내려왔다.

내년에도 올 것이다. 그다음 해에도. 구두를 신고, 지갑을 열고, 차가운 돌을 짚으러.

문이 닫힌 지 서른다섯 해. 종우는 아직 현관 앞에 서 있다.


비슷한 이야기: → 사다리 — 돌아오지 못한 사람을 기다리는 것에 대하여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개구리소년 사건 35주기, 진실은 여전히 어둠 속 — 매일신문, 2026년 3월 26일

한 줄 요약: 1991년 3월 26일 실종된 다섯 아이의 아버지 중 셋은 진실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남은 아버지는 올해도 추모비 앞에 섰다.


작가의 말

기사에 한 줄이 있었다. 우종우 씨가 지갑을 열어 아이 사진을 보여주었다고. 서른다섯 해 동안 지갑 속에 있던 사진. 모서리가 닳았을 것이다. 그 닳은 모서리가 이 사람이 보낸 시간의 두께였다. 나는 그 지갑이 열리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리고 닫히는 순간을.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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