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세영은 밤마다 현관 쪽으로 귀를 세웠다. 신발 끄는 소리가 나면 그제야 베개에 머리를 다시 묻었다. 남편은 응급실 간호사였다. 교대는 늘 밤 열한 시에 끝났다. 근무 중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세영은 그 대신 핸드폰에 동네 이름과 ‘사고’를 함께 검색해보는 버릇이 있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토요일 저녁, 동네 전시장 앞을 지나다 걸음을 멈췄다. 입구에 유화 몇 점이 걸려 있었다. ‘사람과 숲’. 안으로 들어서자 테이블에 책이 쌓여 있었다. 《오늘도 무사히 경찰했습니다》. 제목을 읽자마자 지갑을 열었다. 자신이 매일 속으로 되뇌는 말과 똑같았다.

계산대 옆에 손글씨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책 한 권마다 삼천사백 원을 구매자 이름으로 기부한다고 했다. 어디로 가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세영은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닷새쯤 지나 문자가 왔다. “세영님의 이름으로 ‘생명의전화’에 기부금이 전달되었습니다.” 세영은 선 채로 그 한 줄을 두 번 읽었다.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보다 먼저 온 건, 이름이 제 손을 떠나 혼자 어딘가로 걸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이름만 적었을 뿐, 그 이름이 어디로 갈지는 몰랐다는 것.

그날 밤도 현관 소리를 기다렸다. 열한 시 반,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렸다. 세영은 문자를 다시 열어 자기 이름을 들여다봤다. 욕실에서 물 트는 소리가 났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무사히, 라는 말이 오늘은 조금 다르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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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내 책을 산 127명의 이름으로 기부했습니다 — 오마이뉴스(박승일 시민기자), 2026년 10월 15일

한 줄 요약: 26년 차 경찰관 박승일 씨가 첫 책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산 127명의 이름으로 136만 원을 기부했고, 한 법무법인이 보탠 85만 원까지 합쳐 221만 원이 ‘생명의전화’에 전달됐다.


작가의 말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박승일 씨가 2026년 10월 5일부터 10일까지 생애 첫 책 《오늘도 무사히 경찰했습니다》 출판기념회를 열었다는 것, 책 한 권이 팔릴 때마다 판매가의 20%인 3400원을 구매자 이름으로 기부하기로 해 127명의 이름으로 136만 원이 모였다는 것, 여기에 한 법무법인이 85만 원을 별도로 보태 모두 221만 원이 ‘생명의전화’에 전달됐다는 것, 기부증서는 대표자 이름으로만 발급되지만 실제 기부는 127명 각자의 이름으로 처리되어 문자로 개별 통보되었다는 것은 모두 기사에 나온 사실입니다. 이 글은 그 127명 중 한 사람을 상상해 쓴 이야기입니다. 인물 세영과 그의 남편, 전시장에서의 장면과 대사, 자기 이름이 어디로 갔는지 문자로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의 마음은 모두 제 상상입니다 — 실제 구매자 127명이나 박승일 씨 본인과는 무관합니다. 선행을 혼자 갖지 않고 127개의 이름으로 나눈 그 마음 뒤에서, 자기 이름이 어디로 갔는지 문자를 받고서야 알게 된 사람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해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