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문장

명자는 복지관 계단 앞에서 지팡이에 몸을 맡겼다. 남들 한 걸음 거리를 서너 번에 나눠 디뎠다. 지팡이 끝이 그만큼 자주 바닥을 찍었다. 남들보다 삼십 분 일찍 나온 건 그래서였다.

교실 창가 자리가 명자의 자리였다. 누가 정해준 적 없는데도 다들 비워두었다. 거기 앉으면 볕이 목덜미께로 들어왔다. 아픈 자리였다. 따뜻한 게 닿으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기분만이라도 그랬다.

수강 신청서를 낼 때 명자는 먼저 말했다. “나는 글 안 써요.” 강사는 고개만 끄덕였다.

목뼈 사이 디스크가 눌린 지 오래였다. 수술은 전신마취가 필요했고, 해도 낫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마비가 온다고 했다.

그래서 명자는 걸었다. 종교 모임에, 체조반에, 이 교실에. 글은 쓰지 않았다.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몇 학기가 지나서야 입이 조금씩 풀렸다.

지난주 강사가 말했다. “선생님 걸음이 벌써 훌륭한 문장이에요.” 명자는 웃기만 했다. 문장 같은 건 아니었다. 눕는 게 무서워서였을 뿐이었다.

벽엔 지난 학기 작품들이 붙어 있었다. 명자의 몫은 없었다. 그래도 아무도 묻지 않았다.

오늘도 창가 볕은 그 자리에 있었다. 명자는 거기 앉아 다음 사람을 기다렸다. 목덜미가 조금씩 풀렸다. 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다. 통증이 익숙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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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통증을 참으며 출석하는 것, 이것도 글이다 — 오마이뉴스(최은영 시민기자), 2026년 10월 14일

한 줄 요약: 목 디스크로 글은 쓰지 못해도, 통증을 참으며 매주 복지관 글쓰기 수업에 거의 빠짐없이 나오는 한 어르신의 걸음을, 강사는 “이미 훌륭한 문장”이라 여기게 되었다.


작가의 말

노인복지관 글쓰기 수업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에 목 디스크 때문에 글은 못 쓴다고 미리 선언하고 등록한 어르신이 있다는 것, 지팡이에 의지해 아주 좁은 보폭으로 걷는다는 것, 수술은 전신마취가 필요하고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으며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마비가 올 거라는 의사 소견이 있었다는 것, 종교활동과 주민센터 프로그램 등으로 일주일이 바쁘다는 것, 몇 학기가 지나서야 조금씩 말문이 트였다는 것, 그리고 강사가 그 걸음 자체를 이미 훌륭한 문장이라 여기게 되었다는 것은 모두 기사에 나온 사실입니다. 인물의 이름 ‘명자’와 성별, 창가 자리에서 볕이 아픈 자리를 덥혀준다는 설정, 강사가 그 말을 어르신에게 직접 건네는 장면(기사에서는 강사 자신의 생각으로만 적혀 있습니다), 벽에 걸린 작품들과 명자의 빈 몫은 제 상상입니다. 그 밖의 장면과 대사도 모두 제 상상입니다. 걸음을 문장이라 불러준 그 말 앞에서, 정작 그 걸음을 걸어온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해 써보았습니다.